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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18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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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역풍 속에서 121석의 견제의석을 확보한 것을 성공이라고 한다면 ‘영남당’ 색채가 더 짙어진 것은 실패라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역구 의석의 60%를 영남지역에서 얻었다. 영남을 빼놓고 계산하면 한나라당이 다른 지역에서 얻은 의석(40)은 열린우리당(125)의 30% 정도에 그쳤다. 그동안 비교적 중립적인 표심을 나타내 온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한나라당이 얻은 의석(33)은 열린우리당(76)의 절반에 못 미쳤다.
정당투표 결과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이 부산 울산 경남 등 PK지역에서 30%가 넘는 지지율을, 대구 경북 등 TK지역에서도 2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한나라당은 호남 전역에서 2, 3%의 지지율에 그쳤을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는 달리 전국정당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이런 결과는 선거운동 기간 중 이미 잉태돼 있었다. 박근혜(朴槿惠) 바람은 선거운동 초반부터 TK지역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다. 선거 막판에는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노인 폄훼 발언에 힘입어 ‘박풍’이 영남 전역으로 확산됐다. 당시 일부 원로급 TK 인사들은 “4년 뒤를 생각해서라도 열린우리당 사람을 두어명은 당선시켜야 한다”며 ‘싹쓸이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기도 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당시 TK 결집은 호남에는 공포감을, 충청에는 경계심을, 수도권에는 거부감을 안겨줬다”고 분석했다.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나라당을 이끌고 갈 박 대표는 이 같은 총선 민의를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원내 제2당으로 만들어 준 것은 결코 한나라당이 잘 해서나, 예뻐서가 아니었다. 차떼기 정당, 수구세력이 모인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나라당에 거듭날 기회를 줬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총선 직후 ‘정책정당화 디지털정당화’라는 당 개혁의 윤곽을 제시한 것은 일단 맞는 방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감성코드’가 정치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박 대표는 조직이 아니라 고객을 먼저 생각하며 ‘마케팅을 하듯’ 당 내 개혁에 나서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기호가 달라지는 소비자(유권자)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냉철하게 읽고 개혁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영남 민정계’로 상징되는 당 체질도 바꿔야 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인물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이에 역행하는 사람들은 2선으로 물러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켜야 할 가치와 개혁해야 할 대상을 잘 분간하고, 때로는 진보로부터도 배우는 ‘열린 보수’로 나가지 못하면 한나라당에는 미래가 없다. 유권자들의 심판은 냉엄하다. 4년 전 16대 총선에서 115석을 얻은 민주당의 몰락에서 한나라당은 교훈을 찾아야 한다. 개혁에 실패하면 4년 뒤 한나라당도 유사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영훈 정치부 차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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