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돈으로 사는 ‘사회봉사’

  • 입력 2003년 11월 24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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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만 하더라도 자그마한 권력을 가졌거나 돈깨나 있는 사람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곤 했다. 중대장에게 뇌물을 주고 훈련에 불참하거나 돈을 주고 사람을 사 대리 참석시키는 경우도 허다했다. 애꿎게 운전사와 회사의 일용직들이 대리 참석자로 둔갑하기 일쑤였다. 한다하는 사람 중에는 “나는 일평생 예비군 훈련 같은 것은 받아 본 적이 없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지방공연과 촬영 등에 묶여 훈련에 불참하는 바람에 고발된 연예인들의 얘기가 심심치 않게 신문에 가십성 기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서민들은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정을 딱하게 여긴 형제나 친구가 대신 총대를 메주는 ‘생계형’ 대리 참석도 있었다. 1970년대 중반 새벽에 실시된 향토방위 훈련에 장기 지방출장 중인 기능직 남편을 대리해 참석한 부녀자를 목격한 일이 있었다. 예비군 중대장은 훈련 독려를 위해 참석한 현역 대대장에게 선처를 요청했고, 대대장은 “유사시 남편을 대신해 나라도 나서겠다는 아녀자의 정성이 가상하다”며 이례적으로 대리 참석을 인정했다. 예비군들은 힘차게 박수를 쳤고 훈련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어떻게 보면 그럴듯하고 달리 보면 말이 안 되는 옛 얘기다.

▷법원은 미성년 보호처분자에게 보호관찰과 함께 200시간 이하, 성인 형사범에게는 집행유예와 함께 500시간 범위 내에서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법원의 사회봉사명령에 불참하거나 대리 출석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600여건의 위반사례가 발생했고, 엊그제 인천지검에서는 돈을 받고 사회봉사실적을 조작한 사람이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사회봉사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남편 대신 예비군 훈련에 나왔던 아낙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회봉사명령은 교도소에 가는 대신 불우이웃이나 정신지체아를 돕거나 각종 준법 캠페인에 참석하는 것인데 이마저 게으름과 요령을 피우는 것은 개전의 정이 없는 범죄행위다. 예비군 훈련이야 유사시에 대비한 것으로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하지만, 사회봉사명령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당연히 치러야 할 ‘죗값’이므로 이에 대한 편법과 회피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하물며 돈 주고 사는 사회봉사라니. 그런데 연간 사회봉사명령을 받는 4만5000여명을 담당하는 인력은 불과 93명이란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사회봉사가 이뤄질 수 있을까. 이것도 문제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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