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용호/한나라당, 먼저 실천하라

  • 입력 2003년 11월 4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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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비례대표 의원 전원교체, 지구당 폐지, 기업으로부터 모금 근절 등 정치개혁 5대 방안을 발표한 데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SK비자금 수사에 따른 위기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개혁안을 들고 나와 국민을 기만하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보인다. 다른 쪽에서는 이번 대선자금 사건을 계기로 정치와 선거관련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 ‘지구당 폐지’ 등 가능한 것부터 ▼

이번 한나라당의 개혁방안은 정략적 차원에서 나왔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개혁의 방향이 옳다면 이를 실천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이 한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정당은 위기에 봉착하지 않으면 개혁을 추진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민주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사건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참여 경선제를 도입했던 것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개혁안들이 실종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한나라당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이번 개혁안 중엔 다른 정당과 합의해 법개정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지구당 폐지가 그렇다. 현행 지구당제의 적폐를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법정지구당수 23개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 200여개를 자진해서 연락사무소로 개편하면 된다. 그렇게 솔선하는 노력이 있어야 국민도 믿고 따라갈 것이며 다른 정당도 정치개혁 관련 입법 협상에 진지하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동안 각 정당은 나름대로 상당한 정치개혁 노력을 해 왔다. 국민참여 경선제, 당정 분리, 당 지도부 경선, 원내총무 권한 강화 등은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에 대해 더욱 냉소적이고, 불만이 고조돼 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 원인 중의 하나는 지금까지의 제도개혁이 자기 정파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정략적 차원에서 서둘러 진행되다 보니 체계적인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후속조치도 미흡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민참여 경선제와 당 대표 경선이다. 수십만명의 당원이나 일반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지만 참여한 이들에 대한 사후관리는 거의 없다. 이러니 국민이 정당과 정치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겠는가. 정당이 유권자나 당원을 필요할 때 써먹고 내치는 식으로 제도개혁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정당이 새로운 정치개혁을 말하기에 앞서 이런 점을 반성해야 한다.

젊은 유권자들은 ‘노사모’나 민주노동당에는 가입하지만 한나라당을 비롯한 원내 정당을 위해 활동하기는 꺼린다.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정당의 생명이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원내의 기득권 정당들은 그 이유를 찾아서 제거해야 할 것이다. 제도개혁만이 개혁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악회도 열고, 지하철이나 버스의 분실물도 찾아주는, 생활 속의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노력도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정치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당과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 정당과 국회가 국가경영에 몰두하지 않고 권력싸움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불신을 받고 있다. 싸움 잘 하는 사람들이 정당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 한국 정당은 미래가 없다.

▼ 民生 챙기는 원내중심 정당으로 ▼

이를 바로잡으려면 원내중심의 정당이 돼야 하는데, 특히 국회의원들은 의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당직을 모두 벗어던져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이른 아침에 당사로 출근할 게 아니라 국회로 가 법안과 예산안 심의에 전력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매일 당사에 출근해서 하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결국 다른 당을 비방하는 정치싸움이 아니겠는가.

정당과 국회가 그렇게 싸우는 곳이 아니라 민생을 챙기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는 곳이 돼야 정치개혁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용호 인하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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