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의 여행이야기]바라나시의 인도인들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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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이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5시가 되었습니다.

전날 고용한 택시운전사가 오히려 늦장을 부리며 나타나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친구의 나이보다 더 먹었을 것 같은, 불안하기만 했던 그의 자동차가 나의 우려를 어긋나지 않게 보답하듯, 새벽에 말썽을 피웠던 모양입니다. 하기야 라지에터의 뚜껑도 없이 다니는 것만 해도 기특하지만 ...

길거리에는 남의 집 처마 밑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자고 있으며, 인적이 드문 새벽길에는 잠도 없는 소들만 활보하고 있습니다.

강가로 이르는 고둘리아(GOUDAULIA)의 골목길에 이르자 순례객들과 강가로 목욕하러 나가는 시민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리드미칼하게 들리는 탁! 탁! 소리가 점점 커오자 이윽고 갠지스강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강 건너편의 벌판에서 아침해가 솟구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를 가장 먼저 맞아 준 이 소리는 바로 빨래꾼이 강가의 돌판에 빨래를 둘러치는 소리였습니다.

보트에 몸을 싣고 갠지스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강가의 한 골목에서 화장을 위해 시신을 운구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인도에서 화장장면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지만 처음보는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서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화장을 준비하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소리는 더욱 경쾌하게 들려오고 있는데 그 옆으로는 하수도관의 생활오수가 강물로 흘러 들어오고 있습니다.

옆에는 목욕을 하는 사람이 보이고...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강둑에서는 4명의 아이들이 벌거벗고 마주 앉아 볼일을 보고 있습니다. 애어른 할 것 없이 강변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은 크고 작은 볼일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강을 따라서는 가트(GHAT)라고 불리는 계단이 이어져 있는데 보통 목욕을 하는 곳은 목욕가트(BATHING GHAT)라 하고 시신화장을 위한 곳은 BURNING GHAT로 불립니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다사스와메드가트(DASASWAMETH GHAT)에 가까이 오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머리를 빡빡 민 사람이 흰옷을 걸친 채로 물 속에서 합장을 하며 명상에 잠기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순간 이제까지 보아온 강가의 풍경과 또 다른 모습의 강가의 풍경이 나타납니다.

정말로 경건하고 엄숙한 그 옆으로는 강둑에 걸터앉아 머리를 감고 비누칠을 하는 사람과, 물 속에서 물장구치며 수영하는 사람도 뒤섞여 있지만 서로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연세가 많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 한 분을 모시고 몸을 씻겨 드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단순히 목욕하러 나온 사람들 같지는 않았습니다. 인도의 힌두교들은 일생을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고 생을 마감하는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로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은 성수로서 받아들여집니다.

이들한테 생물학적 성수와 영적인 성수가 굳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성수커녕 목욕물로도 부적당한 이 강물이 그들한테 성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신앙심만이 말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를 따라 나선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강물에 몸을 담그고 명상에 잠기면서 옆에서 물장구 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부러운 듯이 곁눈질하는 모습에서 얘들의 세상은 지역과 종교를 떠나서 지구촌 공통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해가 저 멀리 지평선에서 솟아오르자 강가의 인파는 늘어만 갑니다.

이른 아침 명상과 기도를 위해 나온 힌두교 순례객들은 줄어들고 아침목욕을 하러 나온 시민들은 점점 더 많이 눈에 뜨입니다. 강가에는 물론 탈의실은 없습니다.

여자들은 옷 입은 채로 그대로 물 속에 들어가는데 간혹 상반신을 벗은 여자들도 있습니다. 남자들도 옷을 입은 채 물 속에 몸을 담그기도 하지만 룽이라는 치마와 같은 옷을 펼치고 재빨리 일본 씨름선수처럼 훈도시 같은 삼각천을 가운데만 겨우 가리고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가트의 계단에 걸터앉아 목욕하는 사람들의 벌린 다리 사이로 뭔가가 보여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강가에는 보트를 타고 오르내리며 강가의 풍경을 구경나온 관광객들이 자기 앞을 지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워낙 남녀를 불문하고 신체의 일부분을 노출하는 옷차림새에 익숙해서 일까요?

특히 인도여인의 대표적인 정장인 사리도 어깨로부터 반대편 허리로 대각선으로 두르기 때문에 한쪽 옆구리는 가무잡잡한 피부가 그대로 노출이 된답니다.

목욕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시선을 한군데로 모으는 것이 보였습니다. 어떤 물체가 둥둥 떠서 내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가까이 밀려오자 그것이 화장을 않고 강물에 버려진 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동요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조용히 보트를 가지고 다가와 시신을 매달고 강 한 복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시신이 떠내려오는 강에서, 한쪽에서는 빨래를 하고, 그 위로는 생활오수가 흘러 들어오고... 이물로 목욕을 하며 양치까지 하는데... 뭐가 뭔지 일본인 부부와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화장터가 보입니다. 힌두교의 장례문화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화장을 합니다. 이들은 불교와 마찬가지로 윤회사상을 신봉하며 사람의 삶과 죽음은 때가 되면 생일을 맞이하듯 예정된 행사일 뿐 입니다. 화장을 준비하는 유가족도, 불꽃에 타오르며 한 줌의 재로 변하는 시신을 지켜보는 유가족도 그저 담담할 뿐 입니다.

힌두교에서는 화장을 원칙으로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사두라 불리는 성직자와 어린아이들,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경우는 화장을 않는다고 합니다. 화장을 하는 데에는 백단향나무가 사용되는데 이 장작마저 살 여유가 없는 사람은 대강 화장을 하고 타고남은 시신은 강물에 흘려 보냅니다.

강가를 한번 오르내리고는 가장 중심이 되는 가트에 내렸습니다.

강변에는 노숙자들이 이제 모두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여 번잡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른 아침의 경건하고 엄숙한 모습은 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강변 길에는 노인들이 쭈그려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마사지와 면도를 해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바라나시의 시민들보다는 서양청년들 입니다. 인도에서는 식사할 때에 왼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왼손은 용변을 본 후 뒷 처리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노인의 왼손이 꺼려 몸을 맡길 수가 없었지만 이를 모를 리 없는 서양청년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도 인도에서는 인도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촌에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문화와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가치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갠지스강의 성수의 조건을 우리가 단정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이 갠지스 강물을 성수라고 하면 그들한테 성수인 것입니다.

우리가 문화배경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우리의 잣대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아무리 한국인들의 술잔을 돌리는 음주문화 때문에 간염환자들이 늘어간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는 술잔을 돌리며 “위하여”를 외칩니다. 간염에 걸린 환자도 재수 탓으로 돌리지 술잔 탓을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라나시의 순례객들도 그 강물 때문에 피부병이나 수인성전염병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가 봅니다. 그들의 신앙심으로 성수라고 받아들이는 갠지스강물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여러가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인도사회를 지켜나가는 힘의 원천은 바로 그들의 신앙심 때문인가 봅니다.

“나마스테 NAMASTE”

김동주/김동주치과의원장 drkimdj@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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