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 안방까지]<1>선진 서비스로 고객 사로잡아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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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금융자본이 한국인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시중은행의 절반은 이미 ‘주인’이 해외금융자본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투자방식과 대출서비스로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고 있다.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은 한국 고객의 생활과 밀착된 상품을 개발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며 ‘급전(急錢)’이 필요할 때 찾게 되는 대부업체는 일본계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국제적 금융자본이 한국인의 생활에 가져온 변화와 가능성, 문제점 등을 매주 월요일자 경제섹션에 총 8회에 걸쳐 다각적으로 점검해 본다. 》

“예금 말고 은행을 통해 할 수 있는 투자방법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서울 지하철 강남역 주변에서 A의류메이커의 대리점을 운영하는 홍모씨(42). 지난해 말 “은행에서 예금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가까운 씨티은행 지점을 찾았다.

1억원이 넘는 예금을 갖고 있는 홍씨는 씨티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인 씨티골드 회원으로 분류돼 전담직원과 상담했다. 직원이 가족상황과 소득, 투자성향 등을 묻는 10여개의 질문을 던졌고 20분 후에 홍씨에게 맞는 투자상품과 딸의 유학비용, 노후자금 운용계획을 고려한 ‘포트폴리오’를 내놓았다.

1993년 씨티은행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PB는 이제 대부분의 은행이 고액자산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해외 금융자본의 국내 진출이 확대되면서 한국의 금융소비자들은 이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서비스를 만나게 됐다. 하지만 해외자본의 잠식 속도가 너무 빠르고 단기투자에 집중돼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치밀해진 고객관리, 다양해진 서비스=외국계 금융자본의 국내 진출이 확대되면서 은행 보험 증권 대부업 등 금융 각 분야에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업그레이드’됐다.

최근 회사원 송영주씨(34·여)는 종신보험에 가입하려고 푸르덴셜생명에 연락했다. ‘아줌마 생활설계사’를 상상하며 다음날 회사 부근 커피숍에 ‘사인’하러 나갔던 송씨는 당황했다.

노트북PC를 들고 온 정장차림의 30대 남성설계사가 가입은 받지 않고 30분간 꼬치꼬치 가족사항과 생활여건만 물었던 것. 며칠 뒤 그는 송씨 이름이 적힌 상품설계서를 들고 찾아와 1시간이 넘도록 ‘맞춤상품’을 설명한 뒤에야 사인을 받았다. 요즘은 국내 보험회사들도 거의 이런 식이다.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에 올 1월 옷가게를 연 김모씨(32)는 올해 초 가게를 여는 데 부족한 300만원을 빌리기 위해 일본계 대부업체인 ‘해피 레이디’를 찾았다.

김씨는 “은행보다 오히려 분위기가 깔끔했고 담보가 필요 없었으며 이자는 월 5.4%로 ‘걱정했던 것’보다 높지 않았다”면서 “‘돈이 도는’ 상황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어 연말에 대비해 돈을 더 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자본의 국내 진출 가속화=외환위기 직후 시작됐던 외국계 금융자본의 국내 시장공략은 최근 공격적으로 확대되면서 ‘제2 라운드’를 맞고 있다.

국민은행은 대주주인 골드만삭스와 ING를 포함한 외국인 지분이 70% 수준이다. 최근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4.74%를 인수했다. 1대 주주가 외국인(칼라일)인 한미은행은 영국계 스탠더드차터드은행이 지분을 확대해 외국인끼리 주인이 바뀔 전망이다. 하나은행은 자사주(自社株) 15% 정도를 일본 신세이 은행에 팔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11개 외국계 생보사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98년 1%에서 99년 4.6%, 2000년 5.7%, 2001년 8.0%, 2002년 10.5%로 급상승했다. 또 올 6월 말 현재는 13%를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계 대부업체의 대출액은 국내 대부업체 전체 대출액의 40%를 넘겼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투자자가 증권거래소 상장주식 시가 총액의 38.6%(10월 9일 현재)를 갖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병윤(李秉允) 연구위원은 “해외금융자본이 들어와 선진금융기법이 도입되면 소비자는 더 나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은행업 운영경험이 없는 투자펀드들이 단기이익만을 노리고 금융기관을 인수하는 것은 국내 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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