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허석호와 최경주 '경험의 힘'

  • 입력 2003년 7월 21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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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팬들이 제132회 브리티시오픈에 대해 공통적으로 갖는 느낌은 아쉬움이다.

스포츠에서 ‘만약’은 무의미하다지만 ‘허석호가 최종 라운드에서 허물어지지 않았더라면…’, 또 ‘최경주가 첫 라운드에서 바람이 심했던 오후조에 편성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특히 줄곧 선두권에 있었던 허석호(70-73-72-77)에 대한 미련은 크다. 벤 커티스(미국)의 우승 스코어가 불과 1언더파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허석호(30·이동수패션·ASX)는 왜 21일의 최종 라운드까지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을까.

공동28위로 마친 허석호 자신은 경기 후 “메이저대회라고 해서 별다른 심리적 부담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경험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승부가 판가름 나는 최종 라운드의 압박감은 앞선 라운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다. 근육은 경직되고 미스샷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생애 첫 메이저대회에 출전한 허석호는 최종 라운드 첫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했다. 빨리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날까지 보여줬던 마음의 평정은 한순간에 날아갔고 이후의 부진은 이 조급함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허석호는 “쇼트게임 능력이 아직은 부족한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가 3라운드까지 보여준 능력은 세계 톱랭커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 토마스 비요른(덴마크)이 16번홀(파3) 그린사이드 벙커에서 3타 만에 빠져나오며 더블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다 잡았던 우승트로피를 놓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골프는 멘털게임’이라는 것을 허석호와 비요른이 입증한 셈이다.

반면 최경주(77-72-72-70)는 대조적이었다. 첫 라운드에서 77타를 치며 예선탈락 위기에 몰렸지만 최종 결과는 브리티시오픈 출전 사상 한국 선수로서는 가장 좋은 성적인 공동22위.

그 특유의 뒷심과 끈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미국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두 차례나 치러내고 PGA투어 2승을 거두며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을 원동력으로 꼽는다.

지난달 고국대회인 SK텔레콤오픈에서 최종 홀부터 연장 두 번째 홀까지 3홀 연속 결정적인 퍼팅을 실수 없이 성공시킨 집중력과 승부 근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번 대회에서 허석호는 돈으로 살 수도, 책에서 읽어 습득할 수도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스스로 부족한 점을 잘 알게 됐다”고 말한 그대로다.

허석호의 목표는 최경주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내년 미국PGA투어에 도전하는 것. 그에게 이번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라운드는 저명한 전담 코치의 레슨보다도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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