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류지태/'北송금' 정치적 해결 안돼

  • 입력 2003년 6월 29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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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새로운 인물을 기대하는 것은 참신하고 유연한 생각이나 문제 해결에 대한 신선한 접근 방식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회의를 근거로 그에게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새정치 기대로 대통령 뽑았는데 ▼

요즈음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한 해리 포터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보통시민들이 사회나 정치 문제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것이 노 대통령 지지의 주 이유였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그러나 해리포터 5권을 쓴 조앤 롤링이 자신의 상상력을 신선하게 이어가기 위해 3년이라는 공백을 필요로 했던 것을 보면 가상세계에서도 그 상상력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하게 된다.

하물며 매일 변하는 현실에 직면해 수시로 바뀌어가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새로운 정치세계에 관한 상상력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오히려 정치세계에서는 상상력이 필요 없으며, 냉철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현실주의자들이 더 득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영완 사건’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흔한 강도사건의 한 유형에 불과해 보이지만, 사건 처리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정황들은 예사 강도사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과거정권에서 덮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특검 수사의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계승이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각 시대에는 시대에 걸맞은 인물이 나타나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정치적 비전을 펼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야 하며, 이러한 정치적 태도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올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적극적 해결 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대북 송금 사건 문제는 사실 이번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정권의 문제라는 점에 인식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지난 정권에서의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위법적인 사실들이 드러난다면, 이는 순리에 맞게 그 과정과 결과를 밝혀 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무리하게 지난 정권의 계승자를 자처해 문제들을 덮어 둘 경우 오히려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할 뿐이다.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과거정권과는 차별화된 정치행태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노 대통령이 법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거나, 사법적 판단을 통치적 차원에서 덮는다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 수사가 시작되었을 때 가졌던 생각은 현 정부가 과거정권의 문제를 특검 수사의 방식으로 다 털고 새롭게 시작하는 올바른 방식을 채택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그동안 나타난 문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모두 이번 절차에서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특검 수사의 연장 필요성이 현실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특검 수사기간 연장 거부와 야당의 신특검법안 제출, 대통령의 신특검법안 거부, 대통령의 제한적 특검 수용이라는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불필요한 정치무용론을 생각하게 할 뿐이다.

▼ ‘김영완 사건’등 투명한 처리를 ▼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신속하게 변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정권의 잔재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경제는 돌아가야 하고, 국제적으로는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절박한 일들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조금만 눈을 들어 세상을 본다면, 지금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 왜 우리가 불필요하게 논쟁해야 하는가 하는 한심한 자괴감마저 든다. 지난 정권의 문제는 신속하고 철저한 특검 수사로 종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바람직한 정치는 보통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섞인 기대를 제공하는 데 있어야 하며, 희망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음을 노 대통령은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류지태 고려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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