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인 금융정보가 줄줄 새서야

  • 입력 2003년 5월 19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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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관이 은행에서 개인 금융거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가져가고 그것도 관리 소홀로 줄줄이 새나간다고 한다. 명색이 민주국가에서 국민의 금융거래 내용이 이렇게 감시당하고 노출돼도 되는 일인지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요즘은 대부분 국민의 경제생활이 신용카드와 은행 계좌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금융 계좌만 들춰보면 경제생활 행태는 물론 사생활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계좌 내용은 통화 내용처럼 엄격한 보호를 받아야 할 프라이버시에 속하며 계좌 내용을 함부로 들여다보는 것은 통화 내용을 도청하는 것과 같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금융실명법)이 정부기관의 금융거래 정보 요구를 사용목적에 합당한 최소 범위로 제한하는 이유는 금융거래의 비밀 보장이 안 될 경우 국민경제의 건전성을 훼손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금융기관에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하니 반드시 신분을 확인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금융거래 정보가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금융실명법은 금융감독원이나 수사기관 등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관이 법에 규정된 범위를 넘어 금융거래 정보 제공을 요구할 때 금융기관 직원에게 거부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개인 금융정보가 마구잡이로 넘어가 사채업자들에게까지 흘러들어간 것은 은행 직원들의 준법의식 부족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정부기관이 조사하고자 하는 금융거래의 직전과 직후 내용을 벗어나 해당 계좌의 거래 내용을 포괄적으로 요구하거나 명의인과 거래한 다른 사람의 계좌 내용까지 요구하는 행위는 월권이고 위법이다. 불과 몇 만원의 세금 체납을 이유로 수만명의 금융거래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이렇게 넘어간 자료가 엉뚱한 곳으로 유출된다면 누가 금융기관을 믿고 거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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