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국회 말뿐인 大邱대책

  • 입력 2003년 3월 20일 19시 00분


19일 새 정부 들어 최종찬(崔鍾璨) 건설교통부 장관을 처음으로 출석시킨 국회 건설교통위의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대책회의는 말만 앞세우는 정치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리였다.

건교위는 이날 오전 10시 25명의 소속 의원들 중 17명이 출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지하철참사 수습이 부진하다는 대구 시민의 불만이 비등해진 가운데 새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소관 상임위였던 만큼 주위의 관심도 그만큼 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야 의원들은 하나 둘씩 슬그머니 회의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차례 나온 질의를 짤막하게 던지고 자리를 떠난 의원도 있었고, 심지어 서면질의서만 던져 놓고 황급히 상임위장을 빠져나간 의원도 있었다.

오후 들어 회의장은 더욱 썰렁해졌다. 2시15분 속개하기로 했지만 15분이 더 지나서야 가까스로 정족수 5명을 채울 수 있었다. 장관의 답변이 이어졌지만 금세 끝났다. 오전에 질의를 한 의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비워 ‘답변을 해 줄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 의원들은 상임위가 끝나는 오후 4시까지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의원은 전체 25명 중 신영국(申榮國) 위원장을 비롯해 한나라당 박명환(朴明煥) 윤한도(尹漢道) 이해봉(李海鳳) 김학송(金鶴松) 박승국(朴承國) 서상섭(徐相燮) 안경률(安炅律) 의원 등 8명뿐이었다. 그나마 신영국, 이해봉, 박승국 의원은 대구 경북 출신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대북비밀송금 특검법 협상에 대한 의원총회가 있어 오후의 건교위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고 말했으나 개운치 않은 해명이었다.

회의장을 떠나던 한 건교부 직원은 “점심도 못 먹고 답변을 준비했는데 정작 의원은 나타나지 않았다. 입으로만 참사 대책을 떠드는 건 누군들 못하겠느냐”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가 터진 직후 여야가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냈던 게 과연 진심이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박민혁기자 정치부 mh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