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문열/부패-失政도 인수할 건가

  • 입력 2003년 2월 2일 18시 16분


연초부터 가동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보면서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두 갈래의 상반된 감정에 빠져든다. 그 하나는 빗나간 예단(豫斷)이 주는 부끄러움이고, 다른 하나는 심증(心證)이 물증(物證)으로 바뀌면서 오히려 강화되는 반대의 열정이다. 그때 사람들이 노 후보를 반대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비교적 많은 이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가 아닌가 한다.

▼盧정권이 계승하면 안 될 것들▼

첫째는 노 후보가 지역정권의 양자(養子)로서, 그 지지기반의 성격 때문에 지역주의의 볼모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실제 선거 결과에서도 특정지역에서의 90% 이상 지지와 또 다른 특정지역에서의 70% 이상 반대라는 형태로 지역주의는 뚜렷이 표현되었다. 텔레비전은 지난 선거에 세대와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중요한 변수로 끌어대고 있지만, 정작 당락을 가른 것은 그 두 지방의 지지도 차라는 견해도 있다.

둘째는 노 후보의 승리는 본질적으로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며, 새 정부는 김대중 정권의 승계 또는 연장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는 이 두 민주당 정권은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만큼의 변별성도 없으리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런 승계관계가 되면 지난 5년간 그 지독한 냄새로 국민들의 코를 찔렀던 내정(內政)의 부패와 혼란을 넘어 불안까지 느끼게 했던 외정(外政)의 무능 및 권력남용 혐의를 속시원하게 알아볼 길이 없어진다.

셋째는 소수정권이 가지는 약점의 답습이다. 김대중 정권은 자민련과의 연합으로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고 시작했지만 끝내 소수정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지난 정권들처럼 군대나 경찰을 함부로 쓸 수도 없는 상태에서 기댈 것은 제도 밖의 힘뿐이었고, 그 때문에 난데없는 홍위병 논쟁까지 일었다. 그런데 이제 선거조차 그런 제도 밖의 힘에 빚졌을 뿐만 아니라 의회에서도 터무니없이 소수로 출발하게 될 노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제도 밖의 힘에 훨씬 더 큰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지난 한 달간의 정권 인수과정을 보면서 첫 번째로 품었던 예단은 어쩌면 부끄러운 억측이 되지 않을까 행복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지금까지 드러난 인사의 윤곽을 보면 적어도 파렴치하게 지난 정권의 지역성까지 인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두 번째 부패정권의 연장, 실정(失政)의 인수인으로서의 혐의는 아직도 유지된다. 부패나 실정의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을 덮어버리거나 얼버무리는 것도 부패와 실정의 인수이다. 노 당선자는 지난 정권 때의 의혹사건에 대해 성역 없이 수사할 것이라고 밝혀왔으나 왠지 미온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지금도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문제가 그 시금석이 되고 있다.

현대상선의 송금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불거진 것이지만 그때마다 청와대는 강경하게 부인함으로써 국민들을 거듭 속여왔다. 또 통치행위란 용어는 권위주의 시절에 썩은 법학자들이 독재자의 무능이나 권력남용을 가리기 위해 가르쳐준 못된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아직은 헌법상 뚜렷한 적성(敵性)국가인 북한에 수천억원의 국부(國富)가 몰래 흘러간 일을 덮어버리거나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

▼제도밖 힘에 대한 유혹 떨쳐야▼

세 번째, 노 당선자가 제도 밖의 힘에 대한 유혹도 인수할 것이라는 혐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심증이 물증으로 바뀐 느낌마저 든다. 그 회원 일부는 문화적 테러를 일삼고, 그 활동 일부는 한때 선거관리위원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적이 있는 지지단체는 자진해체라는 그럴싸한 연막을 피우더니 결국 존속을 결정했다. 회원들은 무슨 혁명군이라도 되는 양 기세를 올리고 있고, 그 대표들은 한결같이 문화관광부장관감으로 인터넷에서 추대받고 있다. 제도 밖의 힘을 정권의 도구로 쓰는 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아직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만약 이 모든 일이 그저 한 불길한 조짐이 아니라 저들이 말하는 개혁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면 노 정권은 가장 인수해서는 안될 것을 인수한 셈이 된다.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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