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증시산책]열린 마음과 닫힌 생각

  • 입력 2003년 1월 12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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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에선 ‘나비효과’가 자주 나타난다. 아마존 강에 사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서 강력한 토네이도(회오리바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듯이 한국의 주가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요인들 때문에 주가가 오르내린다.

치마 길이가 짧아지고 화장품 색깔이 밝아지며 유쾌한 코미디가 유행하면 경기가 좋고 주가도 오르는 경우가 많다. 반면 공포영화가 인기를 끌고 복고풍의 느린 노래가 유행하면 경기가 안좋고 주가도 떨어지는 것은 사회 분위기와 (투자)심리가 가라앉아 있는 탓이다.

시장은 항상 암시를 준다. 그런 암시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유연성과 감수성이 있어야 남들보다 앞서 투자해 돈을 벌 수 있다.

올 들어 북한핵 문제나 미-이라크 전쟁 같은 불확실성 때문에 증시는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여 있지만, 코스닥에서 주가가 50% 이상 오른 종목이 18개나 된다. 무선인터넷이나 통신장비 관련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원-달러환율이 떨어져(원화가치 상승)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의 주가는 하락하고 있지만, 원재료 수입비중이 높거나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의 주가는 방긋 웃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최고 펀드매니저로 선정된 피델리티의 조엘 틸링해스트는 해마다 1000명 이상의 기업 임원을 만난다고 한다. 경영진이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 계속 성장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구두 뒤창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기업 방문을 자주했던 ‘살아있는 월가의 전설’ 피터 린치와 닮은꼴이다.

채권시장이 작년에 강세(랠리)를 나타냈지만 돈을 번 펀드매니저는 거의 없었다.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돼 금리가 오를 것(채권가격 하락)이라는 ‘전망’에 매달려 채권을 사기보다는 팔았기 때문이었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없어 회사채 발행이 줄어드는 반면 시중에 돈이 많아 채권을 사려는 사람이 늘어 채권 가격이 오른다는 환경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닫힌 생각’이 그들을 패자(敗者)로 만들었다.

이형택 선수가 11일 세계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대회에서 우승했다. 상대선수가 세계 랭킹 4위라는 사실에 기죽지 않았다. 노력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승리의 여신은 미소를 지어 준다는 것을 또 한번 확인시켜 준 셈이다. 시장이 보내는 암시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과 겸손이 편견과 오만을 이긴다.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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