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2002-16대 대선]전국 투표 스케치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8시 15분


《21세기의 첫 대통령을 뽑는 19일 전국의 투표장에는 처음 투표권을 얻은 대학생부터 100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신성한 한표를 행사하기 위한 행렬이 이어졌다. 처음 투표를 하는 새내기 유권자나 장례 행렬을 멈추고 투표장에 나온 상주 등 모든 유권자가 국가를 올바로 이끌 훌륭한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소망하며 한표, 한표를 던졌다.》

▼서울 수도권▼

○…가족과 함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뒤 ‘선거일 추억 만들기’에 나선 가족들도 많았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김태정씨(40·회사원)는 이날 오후 2시경 부인과 투표를 마친 뒤 아들(6)과 딸(3)에게 추억거리를 남겨주기 위해 투표 장소인 신동초등학교 담에 붙은 대선 후보자 벽보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김씨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자 사진 앞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면 자녀들이 자라나는 모습과 함께 역사가 담긴 사진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공덕2동 공덕감리교회에서 오전에 가족들과 투표를 마친 유승빈씨(58)는 “온 가족이 예술의 전당에 가서 ‘로댕전’을 보고 저녁에는 TV로 개표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고시학원이 밀집된 서울 관악구 신림9동 제5투표소에는 오전부터 고시생을 비롯한 젊은층 유권자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10m 이상 줄을 서기도.

사법고시 준비생인 신재호씨(31)는 “주요 후보들이 모두 법조인 출신이어서 부담없이 후보를 고를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정치인의 이합집산이나 인신공격성 흑색선전 등 구태가 사라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각 선거 투표소에서는 무효표를 막기 위해 개인의 도장을 찍기보다는 지장이나 서명을 추천하기도 했다. 97년 대선 당시 개인의 도장으로 표기를 해 나온 무효표가 40만표에 이르렀기 때문.

서울 마포구 공덕2동 제3투표소에서는 투표사무원들이 도장을 들고 오는 사람마다 “도장 찍으셨으면 주머니에 넣어 주세요”를 외치기도.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본사 2층의 ‘미팅카페’에서 이날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투표를 하고 온 20, 30대 유권자들에게 맥주와 음료수, 다과를 대접하며 ‘즉석 미팅’을 주선.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1동 제2투표소가 마련된 수원예닮교회에는 이날 오후 2시경 우만동 봉녕사 승가대에서 수행하는 비구니 15명이 차례로 투표해 눈길.

한 스님은 “나라의 일꾼을 뽑는데 교회든 사찰이든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며 “진정한 일꾼이 나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한마디.

○…투표인수가 전국에서 가장 적은 인천 서구 신현·원창동 제5투표구(세어도)의 총유권자 38명 중 34명이 투표에 참가.

신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에서 바라다보이는 외딴 섬인 이곳의 22가구 유권자 중 4명은 이날 노환으로 인천 도심의 병원 등에 입원해 있어 투표를 하지 못했다.

○…인천 부평구 삼산동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할린 동포들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마련된 부평 삼산 제5투표구를 찾아 조국에서의 첫 대선 투표에 참가.

지난해 5월 영구 귀국한 사할린 동포는 48가구 78명. 올해 치러진 6·13 지방선거에서 첫 주권을 행사했지만 대선 투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베세누코(70)는 “사할린에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펜으로 표시한다”며 “한국에서는 도장을 찍어 후보자를 선택한다는 것을 제외하고 투표 절차는 비슷하다”고 설명.

○…신분증을 분실해 투표를 하지 못하던 100세 할머니가 동사무소에서 임시로 발급한 신분증으로 행주초등학교에서 무사히 투표.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사무소는 사회복지시설 ‘샘터마을’에 거주하는 구모 할머니가 신분증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직원을 보내 임시 신분증(주민등록증발급 확인서)을 발급.

○…부친상을 당한 경기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 이원우씨(46)와 가족들은 이날 오전 10시경 장지로 향하던 상여를 투표소가 마련된 마을회관 앞에 세운 뒤 상여꾼 20여명과 함께 투표해 눈길.

이씨 등은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는 투표에 빠질 수 없어 상여 행렬을 멈추고 투표를 했다”며 “고인도 이해하고 칭찬을 해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

○…교통사고로 부산 기장병원에 입원 중인 도홍성씨(63·여·기장읍 죽성리)는 병원에서 제공해 준 앰뷸런스를 이용해 이날 오전 기장읍 제11투표소인 한일물산 사무실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

도씨는 “나라의 큰 어른을 뽑는데 참여하지 않을 수 없어서 병원측의 도움으로 투표를 하게 됐다”며 “좋은 분이 당선돼 나라를 잘 이끌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투표소의 장애인 도우미들이 착용한 장애인 안내용 어깨띠가 “민주당과 노사모를 연상시키는 색깔”이라는 이의가 제기돼 선관위가 어깨띠를 사용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등 실랑이를 벌이는 소동.

부산진구 관할 108개 투표소마다 2명씩 배치된 장애인 도우미들은 이날 노란 어깨띠를 두르고 나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강력하게 항의.

선관위 관계자는 “장애인의 눈에 잘 띄도록 구청측이 노란색을 선택한 것 같다”며 “특별한 의도나 불상사도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모교인 부산상고 야구장에는 대형멀티비전이 설치돼 동문 500여명이 방송사 출구조사와 개표 상황을 지켜봤다.

부산상고 동창회는 또 “노 후보가 당선될 경우 모교 정문과 후문에 당선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로 했고 별도의 축하모임이나 행사를 가질 계획은 없다”고 설명.

○…경북 봉화지역에서는 이날 장례식과 결혼식을 맞은 주민들도 친지들과 일찍 투표소를 방문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뒤 식에 참석해 눈길.

봉성면 외삼1리 박병용씨(50)는 모친의 장례식을 앞둔 이날 오전 6시반경 장례에 참석하는 가족과 친지 등 34명을 데리고 봉성면 제1투표소로 가 투표한 뒤 장례 절차를 진행.

박종웅씨(46)는 경기 고양시에서 열리는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 42명을 데리고 봉성면 제1투표소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오전 6시경 투표한 뒤 대절한 관광버스편으로 출발.

○…한총련 주요 수배자가 ‘소중한 국민의 권리만은 포기할 수 없다’며 자신의 투표 장소와 시간을 공개적으로 밝혀 경찰이 한때 긴장.

2000년 부산 D대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한총련 대의원 활동을 하다 경찰의 수배를 받아온 김모씨(26)는 이날 오후 3시 자신의 투표소인 부산 사상구 모 초등학교에서 투표를 하겠다고 밝혔으나 오후 6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부산지역 최고령 유권자인 한기화 할머니(114·북구 구포1동)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며느리 김수순씨(67)와 함께 이날 오전 10시 구포1동 동사무소에서 신성한 한 표를 행사.

한 할머니는 이날 동사무소가 마련한 휠체어를 타고 투표장에 나와 투표 봉사원들의 부축으로 2층에 설치된 구포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

▼충청·강원▼

○…대덕연구단지 석·박사 출신 연구원과 벤처기업가들이 모여 사는 대전 유성구 전민동의 전민중학교에 마련된 제3투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투표행렬이 30m까지 길게 늘어섰으나 대부분이 40∼60대 중장년층이어서 20, 30대 젊은층의 투표 무관심을 반영.

○…충남 서해의 외딴섬인 태안군 근흥면 가의도리섬 주민들은 오전 10시경 100% 투표를 완료. 이 섬에서는 오전 7시경 주민들의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마을방송이 시작됐고, 주민 78명 가운데 육지에 나가 있는 3명을 제외한 75명이 투표 시작 4시간 만에 모두 완료.

마을 이장 주동복씨(70)는 “주민 전체가 어업에 종사해 바다에 나가기 전에 투표를 했다”고 설명.

○…충북 최고령자인 유천복 할머니(109·충주시 호암동)와 김웅기 할아버지(100·충주시 성남동)도 이날 오전 각각 투표장을 찾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 유 할머니는 손자의 부축을 받아 호암동 제2투표소인 호암예식장에 도착해 투표했으며 김 할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성내동 제2투표소인 충주문화회관에 나와 선거 종사원들의 안내에 따라 투표.

○…강원도 내 스키장에는 당초 많은 젊은이들로 붐빌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매우 한산했다.

평창군 용평스키장의 경우 지난 주말 7000여명이 찾았으나 이날 오후 3시 현재 4000여명이 찾아와 스키를 즐겼으며 고성군 알프스스키장도 지난 주말 5000여명에서 이날은 1000명만 찾아왔다.

○…해발 1708m 고지에 근무하는 국립공원 설악산 대청봉 중청대피소 직원 4명도 최근 내린 폭설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오전 8시경 직원 2명이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5시간 동안 하산해 투표를 마치고 다시 대피소로 올라가 나머지 직원들과 교대. 대피소에서 숙박한 40대 여성 한명도 투표를 하기 위해 오전 5시 서둘러 하산.

○…지난 여름 태풍 ‘루사’로 인해 동해안 지역에서 최대 피해를 본 강릉시 장현동 주민들은 오후 2시 현재 59.6%의 투표율을 보여 같은 시간 강릉시 평균 투표율(47%)보다 12%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또 강원 삼척시 정라동 주민 20명은 오전 5시경 출항을 잠시 미루고 정라동 제3투표구에 대기하고 있다가 오전 6시경 일제히 투표를 마친 뒤 곧바로 출항.

▼호남▼

○…광주에서는 한나라당이 323개 투표소마다 각 당에서 2명씩 두게 돼 있는 투표 참관인을 모두 배치하는 등 지난 15대 대선 때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는 한나라당이 참관인을 아예 배치하지 못한 곳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한 곳도 빠짐없이 한나라당 참관인이 명찰을 달고 투표소에 나와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광주시지부 관계자는 “지난 대선 때는 민주당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투표소 앞에서 기호 2번을 암시하는 율동과 구호를 외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전북 남원시 운남초등학교에 마련된 운봉면 제1투표구에는 모친상을 당한 이영춘씨(60·남원시 운봉읍)가 가족과 함께 조문객이 없는 시간인 오전 6시20분경 투표. 이씨는 “신성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가족들을 독려해 투표장을 찾았다”고 설명.

전북 전주시 서곡초등학교에 마련된 효자4동 제3투표구에서도 동암재활원 소속 장애인 45명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를 마쳐 시선을 끌기도.

○…전북 군산에서 어청도를 운행하는 여객선이 2∼4m 높이의 파도 때문에 운행을 중단해 군산 등 육지에 나온 섬 주민들이 어청도에 마련된 제3투표소에 가지 못해 발을 구르기도.

▼제주▼

○…국토 최남단인 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마라도 주민 15명은 19일 오전 11시반 유람선을 타고 나와 대정읍사무소에 마련된 대정읍 제8투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

마라도 유권자 50여명은 이날 대정읍에서 열리는 섬 노총각의 결혼식을 위해 미리 마라도를 빠져나왔으며 투표를 마친 뒤 결혼식에 참석.

이날 결혼식을 올린 김인택씨(41)는 “아침 일찍 투표를 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며 “결혼으로 마음이 설[4]지만 주권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살다가 40년 만에 영구귀국한 제주 북제주군 한경면 고경언씨(63)는 오전 7시35분 신창초등교에 설치된 한경면 제5투표소에서 생애 처음으로 투표. 고씨는 “1962년 일본으로 돈을 벌기 위해 건너간 뒤 영주권을 취득했지만 선거권이 주어지지 않아 한번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었다”며 “고국에서 첫 투표를 해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사회1부·사회2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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