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00…몽달 귀신 (2)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18분


이제 조금 있으면 소원이 고모가 학교에서 돌아올 거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이다. 그럼 엄마도 같이 어서 오니라 하고 그라자. 인혜는 가루를 냄비에 옮기고 항아리에서 바가지로 물을 한 바가지 두 바가지 세 바가지 퍼붓고, 주걱으로 휘저어 도토리가루를 풀었다. 아버지는 지금쯤 제방 위를 달리고 있을 거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하면서. 아버지는 발이 무척 빠리다. 우근이 삼촌도 어깨에 무등 태우고 막 달린다. 너도 목이 서면 아버지한테 무등 태워 달라고 해라. 아버지는 6척에서 쪼매 모자라는 장신이라서, 저 먼데까지도 잘 보인다.

인혜는 어젯밤 일을 떠올렸다. 목덜미에 입맞춤해 준 따스한 입술, 등으로 바짝 다가와 뒤에서 배를 껴안아준 넓은 가슴과 커다란 손, 앗, 움직였다, 다리다, 다리 모양으로 배가 볼록볼록 튀어나왔대이, 힘도 참 좋다, 어이, 뛴다! 하나 둘! 하나 둘! 와 굉장타, 소질 있다! 그 사람과 내 몸 사이는 마치 주형(鑄型)에 흘려 부은 것처럼 틈이 없고, 나와 이 아이 사이에도 틈은 전혀 없고, 세 사람 모두 충만함에 목까지 잠겨 잠이 들었다. 인혜는 솔가지와 나뭇잎을 아궁이에 집어넣고 성냥불을 던졌다. 그리고 풀무질을 하여 불을 지폈다. 이제 일에 길이 들어서 머리로는 생각을 하고 있어도 손이 저절로 움직여 준다. 여기는 우리 집이고, 여기는 우리 부엌이니까 당연한기제. 그 사람과 내 아이를 키울 집 아이가. 인혜는 숟가락으로 호박 껍질을 박박 벗겨내고, 칼로 몸통을 좍 갈라 속씨를 걷어내고 뚝뚝 썰어서 부글부글 끓는 물 속에 가라앉혔다.

뒷집에 동모들아

앞집에 동모들아

꽃바구니 옆에끼고

나물캐러 가자시라

올라가면 올꼬사리

내리오면 늦꼬사리

아금아금 꺾어다가

뒷도랑에 씻어가주

앞도랑에 행가서는

반달이라 동솥안에

샛별같이 바쳐서는

생강후초 양님하여

열두판상 채려놓고

아부님요 어무님요

어서어서 일어나서

오좀기에 세수하고

비단수건 낯을닦고

아침조반 하오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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