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의 영화속 IT세상]대문없는 산장과 첨단 보안시스템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7시 35분


홍석민의 영화속 IT세상: 영화 패닉룸과 홈시큐리티 시스템

밤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파트 현관에는 최신 전자식 잠금 장치가 달려 있습니다. 열쇠엔 첨단 반도체가 들어 있어서 갖다대면 척 열립니다. 전자식이라 복제가 안되기 때문에 훨씬 안전하답니다.

문득 지난 여름 개봉했던 영화 ‘패닉룸’이 떠오릅니다. 패닉룸은 말 그대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피하기 위해 집안 깊숙한 곳에 마련해놓은 공간을 의미합니다.

두꺼운 쇠문과 방탄벽은 필수입니다. 집안 곳곳을 관찰할 수 있는 모니터 시설과 얼마간의 식량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요즘 미국 고급 주택을 중심으로 이런 시설이 인기랍니다. 영화에선 주인공인 조디 포스터가 뉴욕 맨해튼에 이사온 첫 날 바로 이 패닉룸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만.

강원도 내린천 살둔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곳 산장은 대문도 없이 늘 열려 있습니다. 방에 앉아 창호 문을 열면 맑은 하늘과 푸른 산이 코앞에 다가섭니다. 햇빛은 너른 마당을 지나 마루 안쪽까지 들어옵니다. 감출 것도 없고 닫아놓을 일도 없습니다. 먼지조차 집안에 들어왔다가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바람에 실려 날아갑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늘 꼭꼭 닫혀 있습니다. 하루종일 집안에 아무도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베란다 창문은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집안으론 바람 한 점 들어올 일이 없고 햇살조차 앞뒤 아파트 건물에 가려 아침과 저녁에만 잠깐씩 들어옵니다.

그런데 가끔씩 청소를 하면 왜 그리 먼지가 많이 쌓이는지요? 첨단 보안경비 시스템도 먼지는 막아주지 못하는가 봅니다. 오래 전 교과서에서 읽었던 고전 한 구절을 생각합니다. ‘홍진에 묻힌 분네’로 시작하는 바로 그 글 말입니다. 언제부턴가 제 마음속에도 먼지가 그렇게 쌓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먼지에 묻혀서 그렇게 살고 있나 봅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IT칼럼니스트 redstone@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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