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전환기 중세 변동의 힘 '성인숭배'

  • 입력 2002년 12월 6일 17시 57분


◇ 성인숭배/ 피터 브라운 지음 정기문 옮김/ 343쪽 1만6000원 새물결

저자는 고대 후기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깊이 있게 해석해 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뿐 아니라 철학, 종교, 인류학, 미술사 등의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초기 기독교 시대의 ‘성인 숭배’ 현상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분석한다. 이 현상이 어떠한 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달했는지, 또한 당시의 사회, 경제, 정치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 책은 상세히 설명한다.

그동안은 흔히 고대 후기(4∼7세기)의 기독교가 본래 기독교의 ‘고차원성’을 손상시켰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영국 철학자 흄은 “일신교적 관점으로 사고할 수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대중은 ‘저속한 서민들’이기 때문에 다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빠져버린다”고 했고, 독일 철학자 헤겔은 “로마 제국의 지배자들의 윤리가 노예들의 종교에 굴복한 것은 세계사의 가장 커다란 미스터리”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고대 후기가 서양 문명의 몰락기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흥미로운 역사의 전환기임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을 부여하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부터 기독교에서는 예수의 제자인 12사도 외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성인(聖人)’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일반 신자들은 추상적이고 어렵게만 여겨지는 하느님께 직접 기도하기보다 부족한 인간과 더 가까운 성인들에게 부탁해 기도하면 더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영혼은 하늘로 가고 육체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플라톤의 고전적 관념은 점차 변해 6세기 말경에는 죽은 성인이 그 무덤에 ‘현존(現存)’하며 그를 따르는 자들을 보호해 주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중재해준다는 믿음이 생겼다. 순교자들은 최후의 죽음까지 이르는 ‘인내력’을 스스로 증명한 모범으로써, 그들이 겪은 고통 자체가 신의 기적이었다. ‘성인축일’에 낭독되고 재현되는 성인의 ‘수난’은 그의 ‘현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옛 서로마 제국 도시들의 성벽 밖에 있는 성인들의 묘지는 그 지역 종교 생활의 중심지로 변모했고 공동묘지에는 성골당들 및 거대한 건축물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도시 안의 주교 거주지와 성당과 더불어 ‘도시 밖의 새로운 도시’인 새로운 신앙 중심지가 탄생하게 됐다.

저자는 고대 후기의 대중 종교는 저속한 것으로 보고,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기독교의 고상한 진리를 이해했다는 ‘이분 모델’을 버려야 이 시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지중해 전역에는 유력한 보호자(patronus)가 피보호자를 보호해 주는 새로운 사회 구조가 형성됐다. 이들 보호자는 순교자의 시신을 획득할 권리가 있었으며, 이들은 ‘지극히 사적인 장소’인 무덤에 성인의 유물을 가져옴으로써 성인을 한 가정의 범위 안으로 들여올 수 있었다. 성인의 유물이 있는 곳에서는 가난한 자들과 천대받았던 여성들에게 다른 곳에서 누릴 수 없는 휴식과 보호 뿐 아니라 일거리도 제공됐다. 그만큼 고대 후기의 엘리트들은 로마 제국시대보다 대중과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박 혜 원 인천가톨릭대 강사·미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