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한국문학 세계로 가는길 "번역이 반이다"

  • 입력 2002년 10월 17일 18시 36분


◀데이비트 맥캔. 변영욱 기자 ▶다니에 부세.박영대 기자
◀데이비트 맥캔. 변영욱 기자 ▶다니에 부세.박영대 기자
《한국 문학작품이 활발히 외국어로 번역되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학술원(회장 이호왕·李鎬汪)이 18일 서울 서초동 학술원 대회의실에서 ‘외국에서의 한국문학연구’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각각 영미권과 프랑스권의 대표적 한국학 연구자인 데이비드 맥캔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다니엘 부셰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원 명예교수가 방한해 주제 발표를 한다. 이들을 만나 한국 문학작품 번역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들었다.》

■데이비드 맥캔 미국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는 ‘한국문학 진흥기금’을 설치하고 내년부터 한국문학 작품의 번역과 출판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 연구소의 부소장 데이비드 맥캔 교수(58·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사진)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맥캔 교수는 “1976년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무렵만 해도 미국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칠 곳이 많지 않아, 코넬대 일어 일문학과 교수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며 “이제는 미시건대 다트머스대 등 한국문학 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곳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문학 강좌에 관한 일이며, 한국문학을 미국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품 번역과 출판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국문학 진흥기금’은 국제교류진흥회(이사장 여석기)가 기부한 150만 달러를 바탕으로, 하버드대 측에서 연간 6만 달러의 예산을 편성해 마련될 예정. 연구소는 한국문학 작품에 대한 선정 번역 출판 편집 등을 위해 이 기금을 사용하게 된다. 맥캔 교수는 “사실 미국에서 한국작품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다”며 “미국인들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와 작품이라고 해서 미국에서도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는 “포스트 모더니즘 스타일을 보이는 하일지의 ‘새’와 같은 작품이 번역되면 굉장한 반향을 보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활동했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미국에서 몇 차례 번역이 되곤 했지만 일부 작품은 과연 미국인 취향에 맞을지 의문스럽다”고 덧붙였다.

맥캔 교수는 작품의 선정과 함께 ‘번역의 질’과 ‘편집(editing)’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좋은 번역’이 대단히 중요하다. 사소한 일 같지만 영국식과 미국식 영어에는 차이가 있는 데도 한국에선 영국식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그대로 미국에서 펴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몇 년전 나온 이문열의 ‘영웅시대’는 번역이 잘된 작품으로 출간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편집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번역을 마친 다음, 미국인들의 정서에 맞는 표현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하버드대가 발간하는 반년간 문예지 ‘하버드 리뷰’ 최신호에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가 번역, 소개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1960년대 말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경북 안동에 파견되었을 당시, 김소월의 시집을 읽고 한국문학에 매료된 맥캔 교수는 1976년 하버드대에서 ‘한국의 시가운율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다니엘 부셰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원 명예교수

조동일(趙東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와 함께 지난 5월 프랑스의 권위있는 파야르 출판사에서 ‘한국문학사(Histoire de la Litt´erature Cor´eenne-des origines `a 1919)’를 펴낸 다니엘 부셰(74·사진)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원(CNRS) 명예교수가 최근 방한했다.

그는 18일 서울 서초동 대한민국학술원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외국에서의 한국문학 연구’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불어권에 있어서의 한국문학’에 대해 발표한다.

부셰 교수는 “프랑스 말로 번역된 한국 문학작품은 100여종에 달할 정도지만 어느 출판사에 나왔는지를 조사해보면 그리 낙관할 것이 못된다”고 말했다.

그는 “갈리마르나 세이유 같은 권위있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거의 없고 악트쉬드에서 이문열 조세희씨 등의 작품이 나와 약간의 반응이 있었다”며 “그러나 일부는 한국에서만 출판돼 유럽에서는 배포조차 되지 않았고 다수는 이름없는 출판사에서 발간돼 거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가 문학작품의 번역에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그 효과를 보려면 영향력있는 출판사인지 아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부셰 교수는 좋은 번역을 위해선 일차적으로 프랑스인이 주 번역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프랑스인이나 재불 한국인 2세가 주 번역자가 되고 어려운 표현에 대해서만 한국인에게 문의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번역된 작품을 보면 작중 인물의 이름이 보기 흉하거나 우습게 표현된 경우가 많다”며 “프랑스인들은 ‘우’발음을 ‘oo’로 표시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등 알파벳에 독특한 미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부셰 교수는 프랑스어 ‘한국문학사’가 조교수의 ‘한국문학통사’를 발췌 번역한 것으로 국내에 알려진 데 대해 불만이다. 그는 “책의 순서는 그대로 따르되 글을 쓸 때는 원문을 완전히 떠나서 서양인을 위해 새로 썼다”고 말했다. 이 책은 1890년 모리스 쿠랑이 쓴 ‘조선서지(Biblographie Cor´eenne)’이후 최초의 프랑스어로 된 한국고전문학사 서적이다.

부셰 교수는 1957년 가톨릭 신부로 한국에 와 70년까지 가톨릭대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나 이후 신부생활을 그만 두고 한국인 부인과 결혼했다. 72년부터 CNRS에 자리를 잡고 파리 7대학에서 강의해오다 은퇴한 뒤 최근에는 향찰, 이두, 구결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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