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종훈/전과자 vs 전과자

  • 입력 2002년 9월 25일 18시 50분


코멘트
김대중(金大中) 정부에 대한 마지막 국정감사가 벌써 중반에 들어섰다. 그러나 DJ 정부 5년의 업적과 과실을 총체적으로 진단하고 차기 정부에 창조적 대안과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권이 정책대결보다는 폭로와 정치공방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풍(兵風)’ 공방이 대표적인 사례다. 검찰이 두 달째 수사를 계속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사활을 건 듯 이를 물고늘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방어에 여념이 없다. 특히 서울구치소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전과자 2명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표주자’로 나서 대리전을 펼치는 진풍경마저 연출되고 있다.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측이 2000만원을 주고 아들의 병역을 면제시켰다고 주장하는 김대업(金大業)씨는 파렴치한 과거 행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으로부터 의인(義人) 대접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대업씨의 주장이 허위라며 내세웠던 증인 김도술씨의 증언 번복으로 한 차례‘망신’을 당했으나 또다시 전과자 선호형씨의 제보를 근거로 병풍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3일 선씨가 납치와 테러를 당했다며 납치의 배후로 김대업씨를 지목했다. 그러나 김대업씨는 한나라당의 자작극이라고 반박했다.

국감장에서도 폭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24일 법사위 국감에서 “이 후보 사위인 최명석 변호사의 형이 구속됐던 김길부(金吉夫) 전 병무청장을 접견했다”고 주장했으나 최 변호사는 형이 없다.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은 23일 법사위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 3명이 여자 탤런트들로부터 성 상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즉각 “100% 날조된 얘기다”고 반발했지만 홍 의원은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폭로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감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총리 인사청문회(10월1, 2일)와 공적자금 국정조사 청문회(7∼9일)도 ‘대충 넘어가지 않겠느냐’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위기다.

입으로는 ‘정책대결’ ‘민생우선’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무책임한 폭로와 저질공방만 난무하는 막가파식 정치 행태는 언제쯤 사라질까.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