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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9월 16일 0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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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심정이 어떤지 잘 압니다. ‘살인’을 저질러 봤거든요.
제가 하는 게임 레드문(www.redmoon.co.kr)에서 최근 광복절 이벤트를 했습니다. 마법의 약, 무기 등 아이템을 평소보다 많이 게임 상에 흘려 놓는, 백화점으로 말하면 ‘특별세일’같은 행사였습니다. 저는 매일 밤늦게까지 게임에 매달리며 아이템 줍기에 나섰습니다. 아이템을 많이 주우면 주울수록 제 캐릭터인 한지화의 힘은 계속 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눈앞에 커다란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대개 몬스터가 힘이 세고 클수록 때려잡았을 때 녀석이 흘리는 아이템의 값어치가 높거든요. 그 대신 몬스터와 싸우는 동안 제 캐릭터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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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가 시작됐습니다.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습니다. 내 캐릭터가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많았습니다. 한지화가 힘에 부쳐 쓰러지기 직전, 몬스터가 쓰러지고 ‘질풍’이라는 아이템을 흘렸습니다. ‘질풍’은 달리기 속도를 높여주는,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아이템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까부터 주위를 맴돌던 ‘데스티노’ 캐릭터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떨어진 아이템을 갖고 달아났습니다. 힘이 빠진 한지화는 쫓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몸버리고 돈버리고’, 체력도 소진하고 아이템도 빼앗기고 저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할머니, 그 사람 나타났어요.”
다음 날, 우리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친구 하나가 황급히 제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서둘러 게임에 접속하고 봤더니, 역시나 그 캐릭터가 눈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더군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저도 모르게 그만 그 캐릭터를 한 대 때렸습니다. 최고레벨인 한지화의 공격을 받은 그 캐릭터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PK’를 당한 상대방은 이제 처음부터 다시 게임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며칠을 불안감에 몸이 와들와들 떨렸습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습니다.
며칠 고민 끝에 제가 PK한 친구에게 채팅으로 얘기했습니다.
“미안해요. 그때 님이 제 아이템 가로채서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요.”
“아니에요, 할머니. 제가 그만 아이템에 눈이 멀어서….”
온라인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현실세계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서는 역시 현실이 포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shyang45@yahoo.co.kr
▼PK란?
‘Player Killing’. 괴물이나 적이 아닌 동료 게이머를 공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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