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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7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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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이 나온단다. 와중에 민주당은 쪼개지거나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 정당 창립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의 명분을 어기고 납득할 만한 새 명분도 없이 신당을 만든다는 것이 문제다. 정치권의 일부 사람들이 명분은 고려치 않고 상황전술만 좇아 신당을 만들 때 그들은 정치가라기보다는 권모술수가로 전락한다. 그러나 결국 최대 피해자는 정치발전을 애타게 기다리는 국민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국민과의 약속 깨겠다?▼
8·8 재·보선 직후 등장할 신당으로 인해 기존의 어떤 명분이 훼손되는가. 바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너무나 정당하고 당연한 원칙이 깨진다. 우리 헌정사에 획을 긋는 제도라는 찬사 속에 도입된 민주당 ‘국민경선제’에 수많은 국민이 참여했다. 그들은 민주당의 대선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애써 관심과 시간을 내주었다. 그들은 민주시민으로서 그들의 참여와 노력이 정말 한국 정치발전에 일조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런 국민경선과정을 거쳐 노무현 후보가 선출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당 창당은 민주당 국민경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이고, 국민과의 약속을 깨겠다는 뜻이다. 노 후보가 밀실에서 극소수 정치인에 의해 낙점받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기존의 명분을 너무 쉽게 버리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신당 주도 정치인들은 그렇다고 치고, 노 후보 자신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경선 때부터 재신임 운운하며 국민경선제를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 신당의 한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기존 명분의 포기는 그렇다 치자. 신당을 만들어야 하는 그럴듯한 새 명분이 있는가. 언론보도에는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아 신당을 만들고, 그럴 경우 민주당은 어떻게 될 것이고, 새 대선후보는 누가 될 것인가 등 상황전술에 대한 추측만 무성하다. 그러나 정작 왜, 무슨 명분을 위해 신당이 필요한지에 대한 얘기는 부각되지 않는다. 신당 주창자들이 그간 기밀을 유지하느라고 그랬는지, 아니면 향후 사태전개를 예측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 명분에 대해 별로 한 말이 없다. 그 정당성을 평가받아야 할 새 명분이 무엇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들리는 여러 단편적 소식들을 애써 종합해 볼 때 신당의 명분으로 몇 가지를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정당한 명분이라기보다는 대선 승리를 위한 상황전술의 수사적 포장으로 보인다. 첫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들린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기존의 민주당과 노 후보가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없고 반면에 신당은 할 수 있는지 부연도 없고 논리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신당이 어떻게 구성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여전히 전 민주당 의원들이 주축이 될 것이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면 기존 구도보다 신당 구도가 지역주의 타파에 정말 비교우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둘째, 신당의 명분으로 민심을 제시하는 측도 있다. 지금 노 후보가 여론조사상 뒤져 있으니 민주당을 해체하고 후보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명분론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지 선거에서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상황전술론이다. 급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민심이라면 후보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민심과 여론조사 결과를 동일시할 때 정치의 제도화와 원칙에 따른 작동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원칙 지키는 정치인 보고싶다▼
셋째,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당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들린다. 가장 솔직한 주장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가장 명백한 상황전술이다. 다른 어떤 원칙이나 가치보다 특정인에 대한 저지가 더 높은 우선순위를 받을 순 없다. 선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초조감과 강박증이 얼마나 크면, 특정인에 대한 저지를 신당 창당의 명분으로 거리낌없이 내세울 수 있을까.
우리는 도덕군자와 같은 정치인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래도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인을 원한다. 자기 이익을 위한 상황전술도 때론 계산에 넣지만 정당한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그래야 한국정치의 민주적 제도화가 가능할 것이고, 상황논리에 종속된 정치로 인한 울화증에서 우리 국민이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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