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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29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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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아니면 시행하기 어려운 물의 만리장성 공사이다. 중국 관료들이 국회 언론과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신속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효율성 그 자체는 이웃나라의 부러움을 살만도 하다.
▼이市長의 불도저식 의욕▼
그러나 공론의 검증을 받지 않은 대규모 사업이 잘못됐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부르게 된다. 싼샤댐이 기후 및 조류의 변화 등 환경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외국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줄을 잇지만 정작 중국 내에서는 어떠한 토론도 벌어지지 않았다. 싼샤댐이 완공되면 황사에 버금가는 환경재앙이 한반도에까지 밀려오리라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에서도 개발연대의 독재치하에서는 공무원 몇 명이 지도를 펴놓고 선을 죽죽 그으면 국민의 재산권을 묶어놓는 그린벨트가 생겨나고 수십개 면을 물 속으로 밀어 넣는 대규모 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필요성이 널리 인정되는 사업도 주민들의 저항에 부닥쳐 진척이 지지부진하다.
개발연대에 대규모 국가 기간시설의 건설 경험이 풍부한 현대건설 출신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사업에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정도(定都) 600년이 넘는 서울의 환경과 유적을 되살리는 청계천 복원은 서울시장이 된 사람이라면 한번 꿈꾸어 볼만한 대역사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청계천 복원 조감도를 들여다보면 서울 도심에 파리의 센강을 옮겨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청계로 좌우로 늘어선 낡은 상가건물과 너저분한 거리가 사라지고 숲이 우거진 천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물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풍경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러나 청계천 살리기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성공한 개울 복원과는 유가 다른 사업이다. 청계천을 센강으로 만들고 세종로를 복사꽃이 우거진 과수원 길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우선순위도 따지고 비용 편익 분석을 꼼꼼하게 해봐야 한다.
청계천은 장마철이 아닌 시기에는 수량이 적은 건천(乾川)이어서 센강처럼 연중 맑은 물을 풍부하게 확보하기 어렵다. 대형건물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구정물 하수를 희석시키자면 한강에서 철관을 통해 하루 수백t 물을 끌어들여야 한다.
청계고가도로와 청계로를 없애면 종로와 을지로에 엄청난 교통의 과부하가 걸려 사대문 안에서 상시 교통대란이 일어나 시민의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며칠 동안 청계로 상하 도로를 폐쇄해 복원공사 기간과 복원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간단하게 실험해 볼 수 있다.
청계로 좌우 양쪽에서 생계를 꾸리는 상인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보상비와 이전 비용이 예상된다. 집단민원은 죄악이 아니다. 행정이 주민의 복리를 위한 것일진대 이해 관계가 걸린 주민의 손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사회 전체의 이익을 키우는 것이 행정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다.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비용으로 3600억원이 소요된다는 계산서를 내놓았지만 상가 이전 및 권리보전, 주변 재개발 비용을 합하면 그 10배로도 모자랄 가능성이 있다. 대개의 대규모 공사는 여론과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처음에 눈가림식으로 낮은 비용을 제시했다가 공사가 시작된 뒤에는 슬그머니 공사비를 불려나간다.
서울에는 중랑천 안양천 탄천 등 복개되지 않은 30여개의 하천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한강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지만 한강으로 흘러드는 지천은 아직 제대로 손대지 못했다. 청계천에 서울시의 금고를 쏟아 붓다 보면 한강과 다른 30여개 하천의 환경 살리기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기 쉽다.
▼비용-편익 분석 철저히▼
‘주한미군은 노후한 청계고가도로 위로 차를 몰지 않는다’고 적어놓은 홍보자료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시민들의 목숨이 걸려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면 당장 보강공사를 서둘러야지 청계천 복원을 위한 협박용으로 쓸 일은 아니다.
이 시장의 의욕과 지방정부의 한정된 재원으로 과연 청계로를 센강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을까. 이 시장은 중국의 중앙정부 같은 강력한 권력도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최근에는 잦은 실수로 시민의 신뢰가 떨어져 있다. 이런 상태로는 저항이 큰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충분히 조사하고 논의해본 뒤에 잘 안되겠거든 시민의 이해를 구하고 선거공약을 파기하는 것도 용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황호택 논설위원 ht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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