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축구이야기]승리 집착 버리고 ‘아름다운’축구를

  • 입력 2002년 7월 24일 17시 50분


유홍준의 책 ‘화인열전’에 삼품론(三品論)이 나온다. 신품(神品), 묘품(妙品), 법품(法品)이 그것이다. 신품은 타고난 천재로 과거 방식을 초월하지만 그 거칠음이 허물이요, 묘품은 각고의 노력으로 뜻을 이루되 그 작음이 허물이며, 법품은 전통을 준수하되 그것에 얽매이는 것이 허물이다.

이를 축구에 대입해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황선홍, 윤정환, 최문식은 신품이다. 이들은 예측불허의 방향을 본능적으로 직감하며 불과 1초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을 창조한다. 신예로는 고종수와 이관우가 있다. 유상철, 김대의는 묘품. 그 방향을 알면서도 쫓아가기 어려운 스타일로 탄탄한 체력이 그 바탕이다. 신예로 설기현과 이천수가 있다. 신태용, 이을용, 이기형은 법품. 규칙성을 넘지 않는 건조함이 있지만 언제나 일정 수준의 경기력으로 안정감을 준다. 신예로 최태욱과 송종국이 있다.

문제는 신품의 선수들. 승리 지상주의가 판치는 한국 축구에서 신품의 천재적 기질은 용납할 수 없는 ‘개인기’로 치부되곤 했다. 확실히 윤정환, 최문식은 한국형 축구의 피해자들. 오직 황선홍만이 훨훨 창공을 날았으나 천재 플레이메이커들은 한국형 전투 축구에서 제 뜻을 펴지 못했다. 이제 그들의 운명을 고종수, 이관우가 되물림하는가.

어느 자리에서 ‘이젠 아름다운 축구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곧장 맞은 편에서 ‘승패에 죽고 사는 현장과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해 못할 반론은 아니지만 단언컨대 우리 선수들은 아름다운 축구를 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신품들에게 기회를 더 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냉혹한 승부의 현장감과 배치되는 말도 아니다. 축구는 거칠다. 슛을 날리는 상대를 향해 발을 몇 센티만 더 올려도 상대의 발목 관절은 산산조각이 난다. 헤딩하기 위해 점프한 상대의 허리 밑으로 일부러 몸을 숙이면 그 선수 역시 허리가 꺾인 채 실려나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 한순간의 승부욕이 경기도 망치고 동료 선수의 미래도 완전히 끝장내는 것이다. 플레이메이커들이 악의적 태클의 목표가 되는 것도 우리 축구의 고질이었다.

그러니 설령 골을 먹더라도 자신의 몸을 흉기로 앞세우는 거친 축구는 사양해야 옳다. 그것은 상대를 보호하는 도덕적 행위이자 자신의 축구 인생도 ‘깨끗한 승부’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후끈 달아오른 k-리그의 최근 경기에서 우려스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신경질적인 욕설과 거친 태클이 두드러지고 있다. 역동적이며 창조적인 한국 축구의 진화가 여기서 그치는 것인가. 이건 아니다. 월드컵의 신화와 k-리그의 열기는 아름다운 축구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승리 지상주의’에 목을 매는 축구보다 더 박진감 넘친다. 신품의 천재들이 맘놓고 타고난 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k-리그, 모든 선수들이 경기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아름다운 축구 문화를 기대한다.

스포츠문화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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