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증시산책]'미로찾기'와 샌드배거

  • 입력 2002년 7월 21일 18시 14분


홍찬선 기자
홍찬선 기자
주식투자는 미로(迷路)찾기와 비슷하다. 남보다 빨리 간다고 해서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쉬워 보이는 길은 대부분 막다른 골목으로 이어지며, 시간과 욕심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더 꼬이기 마련이다.

미로에서 빨리 벗어나 멋진 세상을 만끽하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고성능 안테나는 필수품. 미로에 들어선 쥐는 초음파 반사로 막다른 골목을 알아내 사람보다 훨씬 빨리 미로를 벗어난다. 증시에는 주가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수없이 많다. 미국주가 급락, 원-달러환율 하락, 외국인과 기관 매도, 고객예탁금 감소, 제조물책임(PL)법과 주5일근무제 시행, 불공정거래 수사 등등. 장애물을 앞서 발견하고 그것의 의미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경쟁력이다.

카멜레온처럼 발빠르게 변신하는 신축성도 중요하다. 막다른 골목을 만났는데도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벽만 두드리고 있다면 정력낭비이다. 연초나 월초에 가정했던 변수들이 바뀌고 있는데도 기존 전망과 포트폴리오를 고집한다면 반드시 실패한다. 주가는 ‘희망’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변수들이 함께 어우러져 나타나는 냉정한 현실이다.

포커 게임에 ‘샌드배깅’이라는 베팅방법이 있다. 카드 패가 잘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베팅을 적게 해 손님을 끈 뒤 막판에 베팅을 늘려 크게 먹는 방법이다. 이렇게 돈을 따는 사람을 ‘샌드배거’라고 부른다. 샌드배거란 말이 생긴 것은 뒷골목 건달들의 무기인 모래주머니(샌드백)에서 유래했다 한다. 이것으로 때리면 외관은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든다.

주식투자에서 샌드배거는 큰장이 설 때만 미로찾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주식을 내다 팔 때 헐값으로 주식을 사놓은 뒤 주가가 크게 올라 남들이 주식을 사려고 몰려들 때 주식을 팔고 다음 큰장이 설 때까지 증시를 떠난다.

미국 주가 폭락으로 한국 증시도 더 떨어질 우려가 높아지는 안개장세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미로찾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 하지만 미로를 빨리 벗어날 준비만 갖춰져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시장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주가는 상승의 싹을 틔운다.

홍찬선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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