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코시안'

  • 입력 2002년 7월 16일 18시 44분


우리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말로 ‘단일민족’이 있다. 역사상 수많은 외침(外侵)에도 민족적 순수성을 유지해온 한민족, 이것이 우리를 다른 민족과 구분 짓는 자랑스러운 잣대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같은 단일민족의 ‘신화’가 개인의 차원에서는 고통의 근원이 됐던 경우가 많았다. 고려시대에 몽골에 보내져 ‘화냥년(還鄕女)’ 소리를 들어야 했던 여인들까지 올라갈 필요도 없다. 파월(派越) 장병들이 베트남 여인들과의 사이에서 낳은 ‘라이따이한’, 주한미군과 우리 여성들 사이에 낳은 혼혈아 등 가까운 현대사에도 찾아볼 수 있는 예는 많다.

▷최근 그 같은 사례가 하나 더 늘었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이 가정을 꾸미는 것이 그런 경우다. 한국인(Korean) 엄마와 아시아인(Asian)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뜻하는 ‘코시안(Kosian)’이라는 조어(造語)도 등장했다. 상당수가 동남아 국가 출신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저임금에 갖가지 차별대우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터에 한국인과 가정을 이뤘을 때 이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시민단체가 추정하는 국내체류 외국인 노동자는 줄잡아 40여만명. 코시안 가정은 5000∼1만가구 정도로 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불법체류자들이지만 5월 정부의 제도 정비로 이들이 겪어야 했던 갖가지 불이익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한다. 하지만 배타적인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알게 모르게 겪어야 하는 문화적 갈등과 소외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국 이주노동자 인권센터의 양혜우 소장은 “자녀교육만 해도 보통 아이들과는 외모가 다른 코시안이 성장할수록 점점 심각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기 피부가 검은 것을 걱정하려면 왜 동남아 남자와 결혼했나요? 우리는 단일민족입니다. 코시안은 한국인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경기 안산의 시민단체인 ‘코시안의 집’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비판적 글 중 하나다. 우울해진다. 왜 우리는 좀 더 넓은 시각으로, 포용의 자세로 이들을 가슴에 품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경제적 국경이 허물어지고 배타적 민족주의가 퇴색해 간다는 세계화 시대가 아닌가. 코시안 가정에 따뜻한 마음을 주어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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