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嚴父와 장남

  • 입력 2002년 6월 16일 21시 20분


“자녀와의 갈등으로 상처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최근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한 아들은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평소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더 큰 갈등을 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청소년상담원 금명자 박사는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자녀가 인격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얘가 감히 어떻게 아버지에게 대들어’ 식으로 갈등을 부인하면 오히려 문제 해결의 기회를 외면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 신세대 중에는 과보호나 과잉학습 아래 커서 인격 장애가 있는 자녀가 많으며 이런 자녀와의 갈등은 패륜(悖倫)으로 폭발할 가능성마저 있다.

누구나 한번쯤 자녀와의 관계를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신세대 중에는 △남에게 매사를 의존하고 자신의 잘못을 남탓으로 돌리는 ‘의존장애’ △자신의 문제를 확대 해석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애적 인격장애’ △감정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경계선 인격장애’ 등의 환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격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폭발할 수 있다.

이른바 ‘인격자’ ‘엘리트’라는 아버지의 자녀가 빗나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그림자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부모는 무의식이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을 자녀에게 투사(投射)해서 늘 자녀를 비난하고, 자녀는 빗나간 행동으로 벌충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분당 교수 살해사건과 1994년 박한상군 사건, 1995년 금용학원 이사장 살인사건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장남이 엄부(嚴父)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양창순 신경정신과 원장은 “부모는 장남을 키우며 과도한 기대감을 쏟아붓기 쉬우며 유교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장남은 분노 좌절감 등 ‘짐’을 안으로만 삭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사건은 장남의 억눌린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경우라는 것.

물론 극단적인 패륜 범죄는 한두 가지 이유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만약 대학생의 어머니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다른 어머니처럼 엄부와 자식 사이에서 ‘완충 작용’을 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누구에게나 있고 대부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인할수록 문제는 더 커진다. 해결책은 하나다.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길이다. 자녀를 ‘내 소유물’이 아니라 친구처럼, 동료처럼 대하는 것, 많은 부모에게 내키지 않을지 몰라도 가장 효과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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