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호원/호남 유권자들의 票心

  • 입력 2002년 6월 14일 19시 09분


6·13 지방선거에 참패한 민주당 못지않게 지지기반인 호남지역 유권자들도 충격을 받은 듯하다.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16곳 중 호남권 3곳과 제주 등 4곳밖에 차지하지 못해 사실상 ‘지역당’으로 입지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거기간 중 표밭에서 느낀 호남 민심도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 정부의 실정(失政)과 각종 게이트에 대해 깊은 허탈감과 상실감을 토로하는 유권자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호남 유권자들이 충격 속에서도 지역감정의 고리를 스스로 풀어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현실 인식에 바탕하고 있다. 선거가 끝난 뒤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다른 지역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기보다는 자성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광주의 모 건설회사 사장은 “진정으로 민주당을 사랑하는 길은 표로써 잘못을 꾸짖는 것이다. 특정 정당이 아니라 유권자를 두려워하는 후보가 단체장으로 당선될 때 광주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호남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은 데 대해 전남지역의 한 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호남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열세를 직감하고 ‘우리라도’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투표 행태가 한나라당의 ‘영남 싹쓸이’에 맞서기 위한 맹목적인 지역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을 예로 들었다. 실제로 광주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정동년(鄭東年) 후보는 27.0%를 얻었고 기초단체장선거에서도 호남의 41곳 중 11곳을 무소속 후보들이 차지했다.

선거 후엔 “이제 더 이상 다른 지방의 지역정서에 맞대응해선 안 된다”고 얘기하는 호남 유권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전남지역의 한 공무원은 “정권이 바뀌면 호남이 홀대받을 것이라는 초조함도 버릴 때이다”고 말했다.

호남 유권자들의 인식 변화가 정치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최호원기자 특별취재팀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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