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고 나서]性, 그것이 알고 싶을때…

  • 입력 2002년 6월 14일 18시 41분


“내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월드컵 열기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요즘 출판가 분위기입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월드컵으로 향해 있는 요즘, ‘월드컵 한파’를 걱정하는 것은 출판계뿐 아니겠지요. 중소규모 출판사에서는 책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다고 걱정입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번 주 도착한 신간은 불과 20여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평소의 3분의1 수준이지요.

내친 김에, 평소 아껴 두었던 구간(舊刊) 한 권을 1면으로 과감하게 올려 보았습니다. ‘성은 환상이다’는 책은 2년 전 출판됐지만, 당시 언론을 비롯해 시장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책입니다. 성에 대한 담론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있었겠지만, 촌스러운 장정만 보아도 이 책에 선뜻 손이 가기란 어려웠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이제 ‘불륜’없으면 드라마가 안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륜 드라마가 공중파 방송의 시청률을 좌지우지 하고 있고, 유부녀가 아무 죄책감도 없이 남편과 정부(情夫)를 오가는 영화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일부 일처제는 신화’라느니 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성의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입니다. 성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고 성의 폭주는 범람하는 상황에서 겉으로 그럴 듯 해 보일지라도 말초신경이나 지적 혼란을 자극하는 책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 문명비평가 기시다 슈의 책은 흡인력도 대단하지만, 성에 대한 탁월한 인문학 철학 심리학적 분석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세상에 섹스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경험한 50대 저자가 현대 사회 질풍노도의 성흐름을 보고 느끼고 의문을 갖고 나름대로 풀어 낸 시각들은 우리에게도 전혀 문화적 이질성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만은)뉴스의 중요한 속성중 하나는 ‘시의성(時宜性)’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한 정보를 주는 일이지요. 저희 ‘책의 향기’팀에서는 책을 고르는데 있어서 이 점을 가장 유념하고 있습니다. 자같밭에서 보석을 고른다는 마음으로 훌륭한 구간(舊刊)들을 앞으로도 열심히 소개하겠습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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