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할머니 흉기피살 대학생아들 범인 충격

  • 입력 2002년 6월 11일 18시 28분


대학교수와 노모 살해 사건은 숨진 교수의 아들이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11일 아버지와 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른 이모씨(22·모대학 3년 휴학)에 대해 존속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10일 오전 3시30분경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W아파트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버지(47·K대 경영학부 회계학과 교수)를 스키폴대 끝에 흉기를 끈으로 묶어 창처럼 만든 도구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또 비명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오는 할머니 진모씨(72·유치원 원장)의 왼쪽 가슴을 찔러 숨지게 한 혐의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범행 직후인 이날 오전 6시경 여자친구를 만나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으며 오후 1시경 집으로 돌아와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 3ℓ를 거실과 시체를 덮은 이불 등에 뿌리고 불을 질러 범행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경찰에서 “명문대를 졸업한 아버지가 ‘공부를 못한다’고 꾸짖는 등 권위적으로 대해 오래전부터 반감을 가졌다”며 “올 초부터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는데 이날 새벽 자는 모습을 보고 살해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K대에서 교수로 근무해왔으며 이씨의 어머니(46)는 이화여대를 졸업했다는 것.

2남1녀 중 장남인 이씨는 국내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 자격을 얻은 뒤 캐나다 벤쿠버로 가 현지 전문대학을 다니다 2000년 국내 사립대에 특례입학했으며 올 초 휴학한 뒤 20일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성남〓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유명대출신 아버지 기대에 열등감서 범행 저질러▼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원망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아버지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10일 대학교수 아버지와 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불을 지른 대학생 이씨(22)는 경찰조사에서 가족의 기대에 부응치 못한다고 아버지가 계속해서 꾸지람해 아버지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된 것이 범행 동기라고 밝혔다.

이씨의 가정형편은 겉으로 보기엔 중상류층의 전형적인 모범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대학교수에 할머니는 유치원 원장, 두 동생과 어머니는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학생활 중이었고 이모와 이모부도 모두 대학교수였다.

이씨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국내로 들어왔으나 학교생활에 적응치 못하다 중학교 때 다시 캐나다 벤쿠버로 갔지만 역시 적응에 실패한 뒤 다시 국내로 들어와 검정고시를 하는 등 내내 열등감에 사로잡혀 지낸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씨의 어머니(46)는 지난해 12월 미국으로 출국, 두 동생의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수재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치 못한 아들 간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국내 명문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대 회계학 분야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수재’였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이씨 친척들이 전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숨진 이씨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큰 아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등 ‘아들문제로 남들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친척들이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씨는 공부는 못했지만 평소 비교적 온순하고 얌전한 아이였다는 것.

결국 높은 기대치를 설정해놓고 따라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기대에 부응치 못하는 아들간의 갈등이 이번 사건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경찰에서 나오고 있다.

성남〓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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