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지단없는 그라운드는…”

  • 입력 2002년 5월 27일 22시 37분


부상으로 개막전 출전이 불투명해진 지네딘 지단(가운데)이 26일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허벅지를 다쳐 벤치로 물러난 뒤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
부상으로 개막전 출전이 불투명해진 지네딘 지단(가운데)이 26일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허벅지를 다쳐 벤치로 물러난 뒤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
27일 2002월드컵축구대회를 보도하는 전 세계 언론의 눈과 귀는 오로지 한 영웅, 프랑스 ‘예술축구의 지휘자’ 지네딘 지단(30·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게 집중됐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지단은 전날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왼쪽 허벅지 뒷근육을 다쳐 전반 37분 교체를 요청한 후 그라운드를 걸어나왔다. 지단이 이처럼 스스로 교체를 요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날 경기가 끝난 후 해외 주요 통신사는 한국이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소식 못지 않게 지단의 부상 소식을 긴급뉴스로 타전했다. AP는 “월드컵 개막 직전 한국에 곤욕을 치렀다는 것보다 지단의 부상이 프랑스대표팀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며 주변의 우려를 전했다.

27일 로제 르메르 감독이 경기 구리시 LG챔피언스파크에서 가진 기자회견장에도 10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몰려들어 지단의 월드컵 개막전 출전 여부에 대해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르메르 감독은 “아직 정밀진단을 받지 않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오후에 서울 시내 모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한 후 28일 오전 팀닥터가 출전 여부를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단은 27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상은 그리 심각하지 않으며 3, 4일쯤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국내전문의들도 하나같이 “지단이 지하 3층(5계단 높이)까지 언론을 피해 뛰어 내려갔다가 뛰어 오른 것을 보면 의학적으로 99% ‘피멍이 든 염좌’이하”라고 말하고 “이 증세는 급성염좌 초기 증세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 정도라면 이틀이면 아픔이 가라앉고 사흘쯤이면 스트레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31일 개막전에 뛰는 데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이것은 감독이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언론과의 숨바꼭질〓지단은 이날 오후 2시20분경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위해 프랑스 대표팀 주치의인 장마르셀 페레, 팀 주무, 연락관과 함께 후문을 통해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해 병원 측 의사가 마중 나와 있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30m 정도의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통과했다. 이때 환자 보호자 등 20여명이 몰려들자 곧바로 지하 3층 MRI촬영실까지 계단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고 검사를 마친 뒤에는 검사실 정문에서 진을 치고 있는 취재진을 따돌리고 옆문을 통해 1층 계단까지 뛰어 올라갔다.

지단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된 프로축구팀 안양 LG와의 연습경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왜 지단인가〓지단이 이처럼 언론과 피 말리는 숨바꼭질을 벌인 것은 자신의 부상 여부가 미치는 파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지단이 월드컵 개막전에 참가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될 경우 이번 월드컵은 시작부터 ‘김빠진 대회’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 98프랑스월드컵 때 브라질의 ‘신 축구황제’ 호나우두가 그랬던 것처럼 지단은 이번 대회를 대표하는 ‘마스코트’다. 대회 개막을 알리는 최고의 하이라이트에 세계 최고의 스타가 불참하게 되면 대회 흥행은 물론 지단에게 거액을 투자해온 스폰서업체들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지단의 올해 수입은 무려 1320만유로(약 153억원)에 이른다. 연봉은 640만유로인 반면 광고계약에 따른 수입이 절반 이상인 680만유로에 이른다. 그만큼 지단에 목을 매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최근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한 국제축구연맹(FIFA)도 대회 흥행을 위해 지단의 활약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스타를 통한 대회 인기몰이는 TV 중계권 및 스폰서 계약을 통한 돈벌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과연 뛸 수 있나〓클로드 시모네 프랑스축구협회장은 이날 오후 프랑스 인테르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검사 결과 지단이 초반 두 경기 정도 결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요 외신은 일제히 ‘지단 두 경기 결장 가능성’ 제하의 기사를 타전했다.

하지만 지단을 검진한 삼성서울병원 측은 “프랑스축구협회와 지단의 상태에 대해 일절 밝히지 않기로 약속했다”며 노코멘트로 일관했으나 지단의 상태를 들은 다른 전문의들은 의학적으로 지단은 경미한 부상이 확실하며 월드컵 출전이 가능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대한정형외과학회 강응식 회장은 “지단은 무릎을 오므리는 데 필요한 넓적다리 뒷부분 근육을 다친 것으로 의심되고 있는데 계단을 정상적으로 뛰면서 오르내릴 정도면 근육 파열과 같은 심각한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근육이 조금 늘어난 정도로는 아무리 심해도 얼음찜질이나 약물요법 등을 통해 통증을 가라앉혀 뛸 수 있다”고 설명했다.

MRI촬영으로는 근육의 파열 여부는 알 수 있지만 근육이 늘어난 정도는 알 수 없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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