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를 합시다]이행우/신용보다 접대로 승부해서야

  • 입력 2002년 5월 27일 18시 55분


우리 회사가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 지역에는 지난 몇년 사이에 대규모 빌딩 숲이 조성됐다. 이젠 뉴욕의 도심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높이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빌딩 숲 안에 있는 회사들이 모두 이 건물들처럼 규모도 커지고 돈도 많이 벌고 있을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업종이 정보기술, 벤처 분야인 점을 감안하면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이에 비해 서울 청계천로 2가와 3가 주변에는 몇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평 남짓한 공구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허름한 곳에 있는 점포들이 모두 대단한 알부자들이라고 한다.

이 상점들은 몇십년 간 그 자리를 신용과 성실함으로 지켜왔다. 고객의 대부분은 10년 넘게 거래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공구 하나하나가 몇푼 안 된다고 해도 수십년 간의 꾸준한 거래가 이들을 알부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거대한 빌딩 속에서 폼 나게 일하는 테헤란로 사람들은 왜 청계천 사람들처럼 많은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욕심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번에 많은 돈을 모으려고 한다. 몇백, 몇천만원은 푼돈일 뿐이다. 모두 대박을 꿈꾼다. 그러다 보면 작은 것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사업 초기엔 작은 돈이나 한 명의 고객도 목숨처럼 여기고 소중히 생각한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오너들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약속도 어길 수 있고, 고객 한 명의 요구를 자세히 다 지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유력 인사와의 저녁 약속, 즉 접대가 늘어난다. 대한민국은 ‘접대의 천국’이다. 우리나라에선 ‘사업은 접대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소위 든든한 백이 있으면 사업에 성공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갖는다. 그러다 보니 각종 게이트가 터지는 것이다.

그럼 이런 정당하지 못한 행동들이 사업에 도움이 되었을까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 회사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많은 기업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정도(正道)를 통한 성공이 오래 간다’는 것이다.

사업에서는 ‘신의’가 곧 목숨이자 정도다. 신의는 제품의 우수성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은 판매를 통한 이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돈을 벌겠다는 의지만으로 일확천금을 꿈꾼다. 대기업에 납품을 해야만 안정된 수입원이 된다고 여긴다. 그러다 보니 인맥이 필요하다. 인맥이 없으면 사업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리를 하고 이로써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제부턴 하나씩 차근차근 정도를 지켜가며 일하자. 신의를 생명으로 삼자. 청계천 공구상 사장님들이 성공한 것은 차곡차곡 신용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고객들은 넉넉하지도 않고 한꺼번에 많은 제품을 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청계천 사장님들은 고객들에게 신의를 심어준다. 그로 인해 고객과의 사이에 깨지지 않는 상도가 존재한다.

이행우 벤트리(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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