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종수/´유리알 국회´ 만들자

  • 입력 2002년 5월 20일 18시 46분


온 나라에 구린내가 진동한다. 무슨 게이트가 그리 많은지 자고 나면 터져 나오는 각종 비리사건들은 이제 그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대통령 아들들을 비롯한 권력 주변 인사들의 겹치기 등장은 얽히고 설킨 비리사건들의 줄거리를 이해하기 힘들게 한다.

대통령의 3남 김홍걸씨가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대가로 주식 등 십수억원의 금품을 제공받은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적지 않은 정관계 인사들이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TPI) 측으로부터 후원금과 거액의 스톡옵션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됨으로써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은 1999년 8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처리할 당시 주무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복표사업권을 민간업체에 줘야 한다고 주장해 이 법안을 찬성14 반대1로 통과시켰다.

▼회의내용 투표결과 공개를▼

이에 따라 당시 유일한 민간업체인 타이거풀스의 로비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으며, 실제 적지 않은 의원들이 이 시점을 전후해 수백만원씩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또한 문화관광부의 고위 관료와 전직 장관 및 의원 비서관 등 많은 사람들이 거액의 스톡옵션을 제공받고 해당업체 등에 스카우트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계에서 엄선된 26명의 심사위원들이 호텔 문을 걸어 잠그고 일주일 동안 사업수행 능력, 사업시스템의 구축 능력, 컨소시엄과 재무구조의 건전성 등을 기준으로 복표사업자를 선정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었겠는가.

권력형 부패는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엔들 없지 않겠지만 유독 현 정권 들어 더욱 고약해 보이는 것은, 공사(公私)를 분별하지 못한 집권 세력의 가치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 핵심 세력과 그 주변 인사들, 그리고 공조직 간부들과 조직폭력배들이 어울려 각종 이권사업에 간여함은 물론 금융비리, 주가조작, 사건은폐 등을 일삼아 온 것은 정권운영자들의 공적 가치관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국정이 사적 가치관에 의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공직자들은 공적 권한을 자신의 이권 추구나 친지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기회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공직자들이 모두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직을 이용한다면 그러한 정부, 그러한 국회가 왜 필요하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개인주의에 기반을 둔 서구 사회는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섬세한 절차적 규칙들을 고안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에게도 사회적 이해 갈등을 조정하고 윤리적 행동을 안내할 섬세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면, 공직자들에게 정당한 법 절차 준수 이상의 덕목을 기대하거나 요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도덕적 엘리트로서의 역할 기대가 무너졌다고 허탈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회적 규범의 공황을 초래할 수 있는 엄청난 비리사건들이 ‘대통령 아들의 구속’이라는 일과성 굿거리로 끝난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할 것이며, 제도적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제도의 개혁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제도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제도 구성의 기본 가치가 사회구성원들에게 공유되고 내면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좋은 통치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제도화하고 있는 주요 가치로는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투명성, 책임성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각종 제도로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권력기관을 견제 감시할 중첩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많은 독직 사건들이 권부로 귀결되고 그것을 억제해야 할 권력 사정기관들이 오히려 독직사건들을 비호 은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상황에서는 권력기관의 일탈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긴요하다. 새로 출범한 부패방지위원회에 특별검사제를 상설화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성적 정치자금 온상 벗어야▼

또한 각종 사회제도를 투명화하는 작업이 진지하게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각종 정책과정에 관한 공적 기록을 엄격하게 유지 관리하고, 그것을 공개하는 투명사회의 건설이 필요하다. 아울러 국회를 비롯한 각급 의회의 회의 내용과 의원들의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등 의회 활동의 투명성도 제고되어야 한다. 투명하지 않은 의회 활동의 영역은 음성적 정치자금 거래의 온상이 될 뿐이다.

이종수 한성대 교수·경실련 부패추방운동본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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