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24) 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 24

  • 입력 2002년 5월 19일 17시 33분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무당3 아주 큰 어선이었어예 배가 항구를 떠나는 순간 가슴에 콱 메이대예 나는 그때 열여섯 살이었어예 조국은 해방됐다고 하는데 나는 엄마 오빠 친구들을 볼 낯이 없었어예 거죽 벗겨진 개 같은 몸을 질질 끌고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좋은지예 왜 살아야만 하는지예 깊은 밤이었어예 갑판에 나가보니까 비가 내리고 있대예 가늘고 가늘어서 내리는지조차 알 수 없는 비였어예 누군가가 옆에 와 서대예 눈을 의심했어예 이우철씨더라예 나는 말을 걸었지예 혹 이우철씨 아닌가예? 그리고 나는 신세타령을 했어예 누구한테든 말하고 싶었지예 그는 나와 함께 비에 젖고 함께 울어줬어예 밀양으로 같이 가자는 말까지 해줬고예 그리고 내 이름을 물었지만 이름만은 차마 밝힐 수가 없었어예 그가 자려고 선실로 돌아간 후에도 나는 계속 갑판에 서 있었지예 얼굴을 들어 비를 맞으면서 노래를 불렀어예 아메아메 후레후레 카아상가 쟈노메데오 (비야비야내려라 엄마가지우산들고) 무카이우레시이나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아라아라 아노코와즈부누레타 (마중나오네 신난다 포롱포롱 참방참방 랄랄라 어머어머 저 아이 홀딱 젖었네) 야나기노네가타테 나이테이루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보쿠나라이인다 카아상노 (버드나무 아래서 울고 있네 포롱포롱 참방참방 랄랄라 나는나는 괜찮아 엄마의) 오오키나 쟈노메니 하잇테쿠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커다란 지우산 쓰고가니까 포롱포롱 참방참방 랄랄랄)

몇 번이나 불렀어예 노래를 부르다가 비가 그치면 선실로 돌아가려 했는데 비는 하염없이 내 얼굴을 적셨어예 오열이 터져나오고 노래소리가 끊겼어예 나는 내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봤어예 아버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누구도 범하지 못했어예 엄마! 엄마가 불러준 이름에는 손가락 하나 못 대게 했어예 열네 살 숫처녀의 이름이라예 나는 내 이름을 껴안았어 빗발이 점점 세지대예 나는 바다로 몸을 던졌어예

말을 끝낸 무당은 빨간 치마를 뒤집어쓴 채 빙글빙글 돌다가 쓰러지고 만다.

두 무당이 후다닥 달려와 치마를 벗기고 안아 올리지만, 무당은 축 늘어진 채이다.

무당1 너가 밀양에 오기 전날 밤, 언니는 꿈을 꿨다. 높은 나무 위에서 비를 맞는 꿈. 이 굿을 하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몽달 귀신이 몰려온다고, 굿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신의 계시였어. 그래도 언니는, 설사 내 몸에 불길한 일이 생기더라도 이 굿은 반드시 해야 한다면서….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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