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배종대/가정폭력방관법?

  • 입력 2002년 5월 9일 18시 32분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특별히 이렇게 이름을 붙여 해마다 되새기는 이유는 가정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가정의 달 벽두에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보도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피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다. 거기에는 매 맞는 아내뿐만 아니라 아내로부터 학대받는 남편의 절규도 있다. 그들의 말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것이다.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처벌된 1만2983명 중 남편 학대로 형사 처벌된 아내가 347명(2.4%)으로 전년 대비 59% 증가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정폭력의 최대 피해자는 아내다.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밖에 노인학대(2.1%)와 아동학대(1.1%)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 해마다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금년 1·4분기의 가정폭력이 전년 동기에 비해 74.4%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가정내 폭력 형법 적용 못해▼

그런데 우리는 1997년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이미 깨닫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목적으로 두 가지 특별법이 제정된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정폭력방지법’으로 알고 있는 것은 피해자 보호를 위한 것이고, 일반범죄와 다른 특별한 처벌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이다. 이들 법률 모두 시민, 사회단체의 강력한 입법 요구를 법무부가 수용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도대체 법률의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기에 가정폭력이 줄어들지 않고 날로 더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가정폭력을 방지하지 못하는 가정폭력방지법은 오히려 가정폭력을 은폐하는 역작용까지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사건을 가정보호사건으로 특별 심리를 해 형벌에 앞서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폭력남편의 안방접근 금지, 아내의 주거나 직장 100m 이내의 접근금지 등 우리가 신문에서 가끔 판결내용을 접하면서 실소를 금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보호처분에 해당되는 것이다. 최장 6개월밖에 되지 않는 이러한 보호처분에 위반되지 않는 한 가정폭력사건은 보호사건이라는 미명으로 형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하거나 상해하면 존속범죄라고 해 가중처벌을 받도록 형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면 가정폭력사건이 되고 형법의 적용이 배제된다. 남편이 아내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중상해 행위를 해도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면 남편은 최소 6개월 동안은 휘파람을 불고 다닐 수 있다.

영리한 가해자라면 처분내용을 성실히 수행하는 척하면서 얼마든지 영원한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사이 상처가 깊어가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법의 가치기준은 하나여야지 둘이어서는 안 된다.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식으로 판사가 무슨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이처럼 법이 편법으로 변하게 되면 국민들은 어떤 기준을 지켜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에게 편리하게 둘 다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맞고 살아도 가정 지키기 강요▼

가정에서 끔찍한 범죄행위를 한 사람인데도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감옥에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은 가정폭력을 일정 정도 방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오늘의 가정폭력은 바로 그 틈새를 온상으로 해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범죄에 해당되는 폭력을 참으면서까지 가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폭력방지법은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 차라리 그런 가정은 해체되는 것이 폭력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국가가 복지정책을 통해 메워 주어야 할 것이다. 가정유지가 절대선은 아니다.

형법이 가정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범죄화하지 않아도 될 사소한 범법행위에 국한되는 것이지 가정을 폭력자의 왕국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법률은 사회의 모든 단위에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오늘의 가정폭력문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법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형법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지키지 않은 사법기관의 인식과 의지의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배종대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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