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수진/노후보, 兩金고리 끊어라

  • 입력 2002년 4월 29일 18시 44분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는 빈사상태의 한국 민주주의에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해 줄지도 모른다.

첫째, 그는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 후보다. 특히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그가 일으킨 정치적 돌풍은 참여 경선을 가장 효과적인 공직 후보 선출방식으로 자리매김하게 해주었다. 둘째, 그는 진정한 자원봉사자 중심의 선거운동 방식을 성공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선거운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민주당 경선 현장을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은 소위 ‘동원된’ 봉사자와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이 뿜어내는 열기의 차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노 후보의 선출은 3김식 정치가 마침내 종식될지도 모른다는 큰 기대감을 갖게 해 주었다. 노 후보는 3김식 지역주의의 대표적 피해자였다. 이런 그가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대통령 후보로 급작스레 부상한 것은 한국정치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간절한 열망 때문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DJ-YS 연대는 지역주의일 뿐▼

노 후보는 이처럼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최근 그에 대한 지지의 급상승은 바로 이 같은 희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 선출 직후 그가 보이고 있는 행보는 이러한 희망이 섣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그는 김대중, 김영삼씨를 화해시켜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정계 개편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동안 분열되어 있었던 민주화세력을 재결집시켜 미완의 민주화를 완결시켜 보겠다는 것이 노 후보의 겉으로 드러난 의도이자 명분이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수사의 이면에 양김 식 지역주의 재생산을 통한 정권 장악이라는 숨은 의중이 감지되는 것은 필자만의 그릇된 느낌일까.

민주화 투쟁은 원래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념적 성향을 가진 사회 정치 세력들을 하나로 결집시킨다. 예컨대, 부르주아와 노동자가 힘을 합쳐 민주화 투쟁을 전개한 사례는 역사상 비일비재하다. 민주주의를 위해 결집되었던 다양한 세력들이 민주화 이행 이후 여러 정치세력으로 분화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은 이러한 분화가 이념적 정책적 갈래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양김씨를 우두머리로 하는 지역적 갈래에 따라 분할되었다는 데 있었다. 그 결과 확립된 지역할거형 사당정치의 적폐를 우리는 신물이 날 만큼 겪어 왔다. 지금 대통령 주위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온갖 권력형비리들 역시 양김 식 사당정치의 산물임을 모르는 국민은 이제 없다. 노 후보가 정녕 정치발전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업고 있다고 자부한다면 무엇보다 양김의 지지와 지원에 의탁해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보려는 유혹을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우선 양김씨의 결합은 더 이상 민주세력의 결합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10년 동안 정치권력을 사유화해서 국가와 국민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쳐 온 두 패거리가 하나의 패거리로 합치려 한다는 것이 올바른 관찰일 것이다. 민주화 이행 이후 양김씨가 행사해 온 정치적 영향력이 뚜렷한 지역적 한계를 보여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이들은 민주화 투쟁의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지역을 장악한 맹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 왔고, 또 이를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사유화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노 후보가 이들의 지지에 기대겠다는 것은 결국 지역주의 전략에 입각해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양김씨의 이념적, 정책적 노선은 대단히 상반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김영삼씨의 원색적인 비난을 상기해볼 때 과연 양자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정략적 이해득실에 입각하지 않았다고 강변할 수 있겠는가. 소위 DJP연대가 서(西)-서(西)연합이었다면, 노 후보가 추진하려는 NDY연대는 남(南)-남(南)연합이 아닌가. 아니면 김대중 정부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던 소위 동진(東進)정책의 정점에 노 후보가 서 있는 것은 아닌가.

▼3金식 구태정치 극복해야▼

노 후보가 이 같은 의혹과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양김과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야 할 것이다. 3김 시대는 단순한 선언만으로 막을 내리지 않는다. 3김 식 정치의 적폐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혁의 방향과 내용을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바른 길일 것이다. 3김 시대를 일관한 노 후보의 소신이 정녕 반(反)지역주의였다면, 지역주의의 마지막 유혹을 과감하게 떨쳐버리는 결단을 그에게서 기대해 본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정치학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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