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노부호/´카드 규제´ 신용불량자 양산 우려

  • 입력 2002년 4월 26일 18시 25분


신용카드 업계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TV에서는 카드빚 때문에 생활이 망가지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사람들을 자주 보도한다.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것도 카드회사가 무자격자에게 신용카드를 남발했기 때문이라는 비난의 소리도 들린다. 정부 역시 신용카드사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다. 개정된 ‘여신전문 금융업법’ 시행령은 카드사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금서비스와 카드 대출의 비중을 2004년까지 50% 이하로 낮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접하면 마치 신용카드사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나 신용카드 업계를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는 현실을 알게 된다.

우선 신용카드가 신용불량자 확대의 주범이라는 인식은 한국의 금융산업구조나 시민들의 카드 연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을 고려하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 카드사는 소비자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거의 최종적으로 이용하는 금융기관이다. 제1, 제2금융권에서 발생했을 신용불량자가 신용위기를 일시적으로 기피하기 위해 카드빚을 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당 부분 타 금융기관에서 발생했을 신용 불량이 카드사로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또 시민들이 신용카드 대금 연체를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풍조 또한 신용불량자를 증가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원인을 간과한 채 규제라는 수단을 동원해 카드사의 대출을 축소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카드사의 부대업무 비율 규제는 결국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전략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겠다는 발상이다. 이 조치로는 신용불량자의 증가를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정부가 규제를 해야 한다면 간접 규제를 해야 한다. 연체율이나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과 같은 자산 건전성 지표로 규제해야 한다. 카드사가 자산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개별 카드사의 전략에 맡겨야 한다. 이것을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자율성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고, 경쟁력을 악화시켜 금융시스템의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대출업무 비중을 50% 이하로 줄이려면 카드사들은 당장 연간 수십조원의 대출을 일방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카드사의 대출서비스 한도가 줄어들면 카드를 통해 급전을 끌어쓰던 고객들이 결국은 사채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신용불량자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규제가 도리어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카드 남용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신용불량자 감소를 위한 제도적 사회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카드사가 고객의 선정 및 사후 관리를 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선진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민간신용평가회사(CB·Credit Bureau)를 활성화시키고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보유하고 있는 국세와 지방세 체납, 의료보험료 체납 정보 등을 금융기관과 공유해 개인고객의 신용상태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B에 의해 신용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해 신용불량자가 살기 불편하게 만들면 개인들은 신용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노부호 서강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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