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유민주 원리' 깨자는 것인가

  • 입력 2002년 4월 5일 18시 18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자신의 과거 발언과 관련해 보여주는 자세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그는 이인제(李仁濟) 후보측이 제기한 ‘메이저언론사 국유화’ ‘동아일보 폐간’ 등의 발언과 관련해 ‘조작’이라며 부인하고 오히려 이를 보도한 언론을 성토하고 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이 아닐 수 없다.

노 후보는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언론을 적대시하는 발언을 해왔다. 지난해 2월 해양수산부장관 시절엔 “정권이 언론에 대한 전쟁선포도 불사해야 한다” “조폭적 언론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지난해 6월 민주당 간부회의에서는 “언론은 최후의 독재 권력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마치 언론에 선전포고를 하는 듯한 위험한 언론관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국유화’ ‘폐간’ 등의 단어는 아예 자신의 머릿속에 없다고 한 노 후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그는 평소에도 언론사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것이 정치적 소신이라고 해왔다.

노 후보는 사건이 불거진 직후 “이런 문제는 의제화 되는 것 자체가 서로 좋지 않다”고 했는데 떳떳하다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언론 보도 후에는 ‘막가파식 보도’라거나 ‘언론의 부당 공격에 맞설 것’이라며 언론사에 전의(戰意)를 보이고 있다. 그는 “공감이 가는 것을 보도하면 왜 수긍하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공감을 하고 안하고는 독자의 몫이지 노 후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국유화든 사원지주제든 소유지분제한이든 권력의 입맛대로 언론사의 소유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 발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발언 등으로 이념적 의혹을 받고 있는 마당에 언론관마저 그렇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노 후보는 언론이 자신을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노 후보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언론은 노 후보의 언동에 담겨 있는,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문제의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노 후보가 “집권하면 동아일보 김병관(金炳琯) 명예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겠다”고 한 얘기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황당한 것이다. 그 모임은 지난해 8월1일이었는데 김 전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이미 7월27일 명예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렇다면 그것이 단순히 노 후보만의 생각이 아니라 배후에 집권 세력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기자들이 함께 들었고 내용을 회사에 보고한 만큼 진상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 후보는 그제 TV토론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노 후보에게 “고발하라. 그러면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이제 노 후보는 잡아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고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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