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규민]강남열풍 뒤집어보기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17분


서울 강남 아파트값이 크고 작은 ‘말썽’을 부린 것은 일찍이 1980년 이후 지금까지 평균 3년에 한 번꼴로 기록되어 왔다. 온 나라 집값을 들먹거리게 하는 이 기이하고 소모적인 강남열풍이 불 때마다 지역주민을 비롯해 그 상황을 연출하는 데 직간접으로 참여한 이들은 늘 여론재판의 대상이었다. 시샘에서 나온 것이든 객관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런 비판이 지속되는데도 불구하고 강남선호가 꺾이지 않는 것은 원인을 그대로 둔 채 나타난 현상에 분개만 해왔기 때문은 혹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을 요약해 보면 ‘한탕주의 부동산투기붐’과 ‘학부모들의 극성맞은 교육열’이 원흉이라는 지극히 ‘공자왈’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여기서 언급된 부동산붐과 교육과열 문제는 정부가 원인제공을 하고 불지르기는 쉬워도 한번 불길이 번지면 강제로 끄더라도 만만찮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존재들이다.

▼‘다수결 평등’이 부른 불평등▼

이번 사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작년에 정부가 가장 낮은 수준의 경기대책인 ‘부동산 띄우기’에 나섰을 때 강남의 폭발은 이미 예고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교육당국이 수능시험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강남을 부각시킨 것도 정부의 ‘활약’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불장난하다가 산불 낸 정부가 진화에 나선 형국인데 세무조사가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거꾸로 이번 일로 부동산경기가 죽으면 답답해진 정부가 언제 또다시 불쏘시개를 태워 투기붐을 재촉할지 그게 더 궁금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더 깊게 걱정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사회에 급속히 번지고 있는 ‘다수결식 평등주의’다.

예컨대 이번 겨울 강남문제가 유난히 심각해진 데는 올해부터 시작되는 수도권지역 고교평준화 영향이 작지 않다. 재작년 가을, 경기도교육청의 여론조사에서 고교평준화를 지지한 72.8%의 신도시 주민들은 ‘교육평등’을 내세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신도시 유명고교들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27.2%의 비평준화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올 겨울 명문학군을 찾아 강남으로의 대탈출을 결행했다. 모르면 몰라도 이들이 떼지어 빠져나간 도시의 학력수준과 아파트값은 강남지역과 더욱 불평등한 방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남아있는 평등주의자들에게 손실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강남을 여전히 강남으로 남게 만든 또 다른 요인은 교육당국의 평등주의에 있다. 자립형 사립고의 시범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평등’을 주장하는 계층에 동조한 교육당국의 불허방침으로 이 제도는 물 건너갔다. 유명사립고 몇 개가 서울의 동서남북에 생겼더라도 강남문제가 이처럼 계속 시끄러웠을까.

강남을 더욱 부각시킨 이런 유의 평등주의는 놀랍게도 지독한 불평등을 낳는 결과로 이어졌다. 옛날에는 돈 없는 학생도 공부 잘하면 좋은 고교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리 우수한 학생도 엄청난 집값을 감당할 부모를 만나기 전에는 강남에의 접근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는 ‘단순히 강남 명문학원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학 들어가는 데 유리한 위치에 서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식의 또 다른 평등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학교 때문에 집값이 달라지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합격시키는, 예컨대 뉴저지주 일부 명문학군내 집값은 소름끼치게 비싸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게 위화감 조성의 죄를 묻는 여론재판을 본 적은 없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미국과 우리네의 처지가 다르다는 항변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라도 이제는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위화감 조성”여론재판 해서야▼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누가 내는가. 아무래도 비싼 집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재산세를 내고 럭셔리카를 타고 다니는 부자들에게 무겁게 물린 세금이 상대적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졸부들의 허세는 배격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관이 달라 강남을 선택한 사람들을 평등주의적 시각으로 재단하고 그들을 ‘위화감’이란 말로 속박할 때 덜 가진 계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의 그물코는 허술해질 수 밖에 없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성취를 위한 사회적 동기와 자극이 끝없이 제공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경쟁은 필요불가결의 존재다. 그러나 평등주의의 이름앞에 가진자가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되는 나라에서는 모두 못사는 하향평준화 이외에 다른 선택의 길이 있을 수 없다.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지만 우리 사회에 퍼지고 있는 이상한 평등주의가 진정되지 않는 한 강남열풍은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이규민 논설위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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