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전쟁’ 백태]맞벌이 부부 '방학과의 전쟁'

  • 입력 2001년 12월 20일 17시 52분


“첫 주는 시댁, 둘째 주는 친정…. 아이 맡길 곳을 찾아 아침마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방학이 이젠 넌더리가 나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전국의 초등학교가 이번 주 일제히 방학에 들어감에 따라 방학기간 중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보육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일부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를 친지나 베이비시터에게 부탁하는가 하면 전일(全日) 학원에 보내기도 한다. 또 겨울방학 캠프에 참가시키거나 장기 해외연수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학교에 보낼 때만큼 맘이 편하지는 않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맞벌이 부부들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집 열쇠를 아이들에게 맡긴 채 노심초사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아이 맡기기 백태(百態)〓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맞벌이 주부 홍지영씨(40·서울 금천구 시흥동)는 방학이면 아이들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 부산의 친정에 아이들을 내려보내기 때문. 홍씨는 “70세 노모에게 철없는 아이를 둘씩이나 보내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어린애들이 저희들끼리 끼니를 해결하며 생활할 것을 생각하면 생이별이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장 정모씨(38·서울 성북구 성북동)는 방학이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학원비를 대느라 허리가 휜다. 정씨의 아들은 방학이면 부모가 귀가할 때까지 보습학원, 피아노학원, 태권도장, 수영장 등 4개 학원을 순례한다. 게다가 매일 2개씩 받아보는 학습지까지 합치면 정씨가 아들에게 쏟아 붓는 돈은 월 80만원 안팎.

방학이면 2명의 초등학생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맞벌이 주부 김인숙씨(39·서울 구로구 구로동)는 “아이들이 학원에 갔는지 체크하기 위해 하루에도 5번 이상은 전화를 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외국에 보내 보육문제를 해결하는 가정도 있다.

초등학생 자매를 둔 맞벌이 주부 김효진씨(36·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지난 여름 아이들을 미국 뉴욕의 7주짜리 어학연수프로그램에 보낸 데 이어 올 겨울에도 미국 연수를 보낼 예정. 그는 “항공료에 체재비까지 둘이 합쳐 400만원이 넘게 들었지만 직장생활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아예 연수를 택했다”고 말했다.

주부 정순영씨(46·공무원)는 지난해부터 아르바이트생 베이비시터로 보육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집안일을 해주는 파출부보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베이비시터가 아이들 정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

최근에는 회원제로 베이비시터를 연결해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으며 맞벌이 부부가 많은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의 경우 대여섯 가정이 한 조를 이뤄 아이를 공동으로 돌보는 ‘맞벌이 커뮤니티’까지 생겨났다.

▽‘열쇠아동’ 80만명〓한국여성개발원에 따르면 전국의 초등학생 430여만명 중 맞벌이 가정의 자녀는 80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방과 후 빈집에 들어오는 이른바 ‘열쇠아동’은 30%인 24만명 정도. 그러나 사회복지관과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아동보육시설은 533곳(수용인원 약 1만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나마 방학 중에는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육아문제를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보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육시설을 대폭 확충하는 한편 아동보육을 담당하는 전문 아동지도교사를 대대적으로 양성해야 한다는 것.

한국여성개발원 김재인(金在仁) 실장은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와 주민자치센터 등의 시설을 아동보육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아동보육 전문가를 대폭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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