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가로수길'의 패션제안…개성파 멋쟁이 '가을유혹'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13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 길'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 길'
옷에 담긴 ‘손맛’을 찾아주는 사람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열정을 간직한 사람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현대고등학교 정문 맞은편)에 입성한 디자이너들의 공통점이다. 이곳보다 임대료가 1.5배나 비싼 청담동 의상실 거리로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감각과 실력만큼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옷장이’들.

한때 화랑이 많아 ‘화랑거리’로 불렸던 이 길에 95년부터 하나 둘 입성하기 시작한 의상실이 벌써 30여곳에 달한다.

패션 전문가와 전공 학생, 개성파 패션 리더 등 소수 마니아층이 많고 구경 삼아 들르는 ‘뜨내기’들은 뜸한 것 또한 이 거리의 특징. 최근에는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10일 정오경 열리는 ‘거리 패션쇼’가 대표적인 사례. 수십명의 전문 모델이 가을볕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은행나무길을 행진한다.

숍마다 뚜렷한 개성 때문에 단 하나의 ‘상징코드’를 찾기는 힘들다. 차마 지나칠 수 없는 이 거리의 디자이너숍 몇 곳에 들러 단풍처럼 농익어가는 가을 패션을 들여다봤다.

▼누에(Nu´e)▼

보라색과 베이지의 절묘한 조화. 실용적이고 심플한 멋이 ‘옷 욕심’을 마구 자극한다. 참하고 여성스러운 디자인에 반해버려서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낯 간지러운 말을 떠올리게 된다. 밑단에 자연스럽게 굵은 주름을 잡아 볼륨감을 준 진보라색 스커트와 말린 꽃다발의 건조한 질감을 연상시키는 스카프가 대표 상품. 도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최은경 실장(31)은 의외로 “산골짜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옷감의 소재 표현이나 지나침이 없는 색상에 그의 어린 시절이 묻어난다. 투피스 70만원선. 블라우스 30만원선. 02-541-2390

▼어 코너(a corner)▼

사이좋은 누나와 동생 같은 부부 디자이너 태명은(32), 박철민 실장(30)은 2개월 전 이 거리에 숍을 열었다. 재클린 케네디의 우아함을 연상시키는 60년대 복고풍이 여성복의 테마이다. 7분 소매코트와 에이라인 스커트, 끝이 둥근 칼라가 할리우드 흑백영화를 연상시킨다. 남성복은 ‘부드럽고 편한(soft & easy)’ 컨셉트가 주조를 이룬다. 스웨이드 소재의 카디건에 몸통 부분에만 가죽을 덧댄 뒤 바느질 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현대적 느낌을 준다. 갈색 재킷과 바지, 하늘색 셔츠도 멋진 코디법. 셔츠가 18만원대. 가죽재킷이 60만원대. 02-517-6383

▼메뉴 엔 소스(Menu N Sauce)▼

쇼윈도에 걸린 빨간 블라우스와 초록색 목도리가 때 이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긴다. 펠트, 면, 울을 압축해 초록색으로 염색한 목도리가 ‘의외로’ 짙은 분홍색 셔츠와도 잘 어우러진다. 분홍색, 원색 계열 목도리는 얼굴을 환하게 보이게 해주는 ‘효녀’ 아이템. 최근 출시된 겨울코트에는 왕사탕만한 단추를 달아 복고풍 이미지를 더했다.

늦가을 ‘멋쟁이색’으로 김진정 실장은 분홍색을 추천한다. 보통은 ‘봄 색깔’로 여겨지지만 고정관념을 깰 때 가을이 훨씬 발랄해진다. 코트 49만원선. 바지 19만원선. 02-545-2881

▼론 커스텀(Lone costume)▼

지난 달 말 열렸던 서울컬렉션 이후 그의 작품에 매료돼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가수 김원준을 연상시키는 외모가 ‘예쁜 남자’를 일컫는 ‘꽃미남’에 가까운 정욱진 실장(35)의 남성복 컨셉트는 ‘깔끔’ 그 자체. “제 옷은 남성복의 전성기 1920년대를 연상시키는 실루엣이 특징입니다. 어깨는 좁게, 바지는 길고 여유 입게 입는 스타일이죠.”

검은색, 회색 정장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몬드리안 칼라’로 꼽히는 빨강 노랑 파란색으로 안감, 액세서리에 포인트를 두어 무거운 느낌을 잠재웠다. 셔츠 16만∼24만원대. 슈트 70만원대. 02-515-0351

▼이고 임(Igo Im)▼

이 거리에서 가장 ‘튀는’ 가게. 사람의 머리 모형을 간판으로 활용했을 정도다. 디자이너 임선옥 실장은 95년 이 거리에 처음으로 디자이너 이름의 간판을 내건 ‘가로수 길의 개척자’다. 천의 끝부분을 마름질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한 오렌지색 블라우스는 벨벳 소재로 되어 있어 감촉이 좋다. 펼치면 세일러 칼라, 목에 휘감으면 작은 목도리 기능을 하는 셔츠 등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50만원대 이상인 코트는 베이지, 검은색 등 무난한 색깔이 많다. 앞여밈에 넉넉한 숄을 달아 따로 목도리를 걸친 듯한 착각을 주는 겨울코트가 눈에 띈다. 02-3443-3935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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