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반도체 탈출구 없나-중]장비업체 "내년까지 버틸지"

  • 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22분



충남 천안에 있는 한국기술교육대 반도체장비기술교육센터(SETEC)는 요즘 고용유지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반도체 장비재료 업체 직원들로 넘쳐난다. 반도체 경기 침체로 칩 메이커(chip maker)들의 설비투자가 크게 줄자 감원 대신 정부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유휴인력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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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비업체 대표는 “9월부터는 공장가동률이 40% 이하로 떨어졌다”며 “보유 현금도 줄고 있어 내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요즘 반도체 장비재료 업체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거의 모든 업체가 적자를 내고 있고 이대로 가다간 내년 말까지 버틸 곳이 없다는 ‘공황심리’마저 번지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 미래산업 동양반도체 실리콘테크 아토 코삼 등 28개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재료업체들의 올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5%나 줄었다. 하반기에는 4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전 이유는 우선 칩 메이커의 설비투자 축소. 하이닉스반도체는 신규투자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며 삼성전자도 내년에는 투자규모를 20% 이상 줄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수출길이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시장 자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셈이다.

기술의 부가가치가 떨어진다는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웨이퍼에 막을 올리는 화학적박막생성장비(CVD)나 설계대로 막을 깎아내는 에처(etcher) 등 고급기술 장비보다는 중저급 기술의 보조장비 생산에 치중하고 있다. 실제로 고급기술 장비시장은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과 일본의 도쿄전자연구소(TEL) 등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 정보기술공학부 서화일(徐華一) 교수는 “특히 기술개발의 위험을 장비업체에만 부담시키는 것은 신기술개발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칩 제조업체와 장비업체가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반도체산업의 장기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 장비업체 관계자는 “제품기술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수억원대의 기술투자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삼성전자가 역점을 두고 있는 장비업계와의 기술공동개발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LG투자증권의 구희진 연구원은 “장비재료산업은 반도체산업 자체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부문”이라며 “정부차원의 연구개발비 지원과 산학연구체제의 구축, 해외판로망개척 등의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자원부 정태신(鄭泰信) 생활산업국장은 “현재 시행 중인 ‘반도체장비 관세 감면 공장 지정제도’를 보완해 세제혜택을 확대하고 정부와 반도체장비 관련협회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산업협력단을 구성해 중국 등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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