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회마을 관광업소 일제철거로 시끌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47분


가장 한국적인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의 ‘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인 하회마을.

지난 주말 이곳에는 관광객 1000여명이 찾아왔다. 마을 입구 가게 곳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현수막에는 붉은 글씨로 ‘생존권 보장하라’ ‘우리 옛 터전을 보전하라’ ‘우리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거칠게 씌어있었다.

안동시가 10월 세계유교문화축제 등 행사를 앞두고 기념품 가게와 식당 등 업소에 대한 일제 철거방침을 내리자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 시는 주민들에게 8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 12일 강제 철거에 나선다고 최후통첩을 해놓은 상태다.

시 관계자는 “하회마을에 갖가지 업소가 난립해 분위기가 혼탁하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철거 방침을 세운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막상 가게문을 닫아야 하는 주민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류시중(柳時重·43)씨는 “비록 불법 건축물이지만 10년 넘도록 장사를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뜯어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한숨지었다. 철거 통보를 받은 주민들은 내년에 집단상가가 들어설 때까지라도 장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하회마을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김모 할머니(68)는 이 같은 마찰에 신물이 난 듯 끌끌 혀를 찼다. “관광객도 좋지만 하회마을 인심이 너무 야박해졌어. 옛날엔 우리 마을에 빈 몸으로 들어와도 집 주고 땅 주고 했지.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 서로 민박손님 차지하려고 난리지. 당장 돈이 생기니까 마을이 온통 식당이다 민박이다 하면서 정신을 못 차려.”

관광객들을 맨 먼저 맞는 것은 골목골목마다 밀집해 있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 등 업소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데리고 대구에서 온 박연규씨(45)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는 한곳에 모여 있으면 좋겠다”며 “하회마을은 어느 대도시 못지 않은 ‘간판공화국’”이라고 꼬집었다.

젊은이 4, 5명이 중요민속자료 제177호인 하동고택(河東古宅) 대문 앞을 기웃거리다 발걸음을 돌린다. “문화재라는 집 앞 안내문을 읽어보고 들어가려는데 안에는 식당을 하고 있어 못 들어가겠어요. 뭐라도 음식을 시키지 않으면 왠지 눈치가 보입니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40대 부부도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기대를 잔뜩 하고 왔는데 별로예요. 고장난 커피자판기가 초가집 마당에 있질 않나. 사방이 식당이고….”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온 이영섭씨(33·청주시 용암동) 부부. 이씨는 마을 한복판에 있는 ‘하회마을 안내도’를 가리키며 불만을 터뜨렸다. “식당과 민박집만 잔뜩 표시해놓고 안내판이라니요.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닙니까. 안동하면 하회마을이라고 해서 어렵게 왔는데….”

이씨의 아내도 거든다. “고택 몇 채 이외에는 일반 관광유원지와 다를 게 없네요. 그나마 마을입구 공터에서 열린 탈춤이나 보고 들어와서 다행이지.”

하회마을이 한국의 멋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업소를 철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더욱 근본적인 보존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회마을 연구 권위자인 안동대 국학부 임재해(林在海) 교수는 “주민들이 생업을 꾸리며 살아가는 자연마을이라는 점과 국가적 관광지로서 민속마을이라는 두 측면을 함께 조화시키는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빈집에는 제사 등 전통적인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관광객도 예약을 받아 일정 인원만 정해진 시간에 입장시키는 등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동〓이권효기자>sap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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