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화유/한국내 영어안내문 총점검을

  • 입력 2001년 8월 31일 18시 27분


얼마 전 서울에 다녀온 미국인 친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인천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가는데 어느 문 앞에 이르니 ‘NO WAY OUT’이라고 써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이 공항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 즉, ‘당신은 독 안에 든 쥐다’라는 농담으로 보여 웃음이 절로 나왔다고 한다.

물론 ‘이 문을 통해서는 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써놓았겠지만 그런 뜻이라면 ‘Do Not Enter’ 또는 ‘Not an Exit’가 맞다. 동북아 항공교통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인천공항이 이런 엉터리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면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대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의 북악산 팔각정 전망대의 안내판에는 ‘이 지역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사진촬영을 금합니다’라고 한글로 적혀 있고, 그 밑에 영어로 ‘Don’t take a photograpy of a here because of a military protection area’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엉터리 영어의 극치이다. 문법은 물론 단어 철자(photograpy)까지 엉망이다. ‘Picture-taking is forbidden here for military security reasons’라고 써 붙여야 한다.

서울 남산공원의 영문 안내판은 더 엉망이다. 철자 틀린 것, 구두점 제대로 찍지 않은 것, 단어 띄어쓰기 하지 않은 것, 문법 틀린 것 등 제대로 된 문장이 없다. 그리고 북악산 안내판인지 남산 안내판인지 분간이 안된다.

이 안내문에 따르면 북악산이 나중에 남산으로 이름이 바뀐 것처럼 되어 있다.

수출용 상품의 영문 설명서도 엉터리가 많다. 인삼이 피로회복에 좋다면서 ‘피로 회복’을 ‘restoration of fatigue’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피로회복이 아니라 사라진 피로를 도로 가져다 준다는 정반대의 뜻이다.

엉터리 영문 설명서, 안내문, 도로표지판 등은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서울 출입국관리소가 나눠주는 안내문조차 영어가 매끄럽지 못하다. 서울시가 한달 동안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19개 지역의 영문 도로 표지판을 조사한 결과 잘못된 표기를 700여건이나 발견했다고 한다. 한국방문의 해가 무색하다. 이래서는 내년 월드컵 행사를 치를 수 없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담당공무원들에게만 각종 영문안내판 제작을 맡겨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담당공무원이 영어에 자신이 없으면, 설령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전문가에게 번역을 부탁하고, 다시 영어 원어민에게 감수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담당공무원을 감독하는 상급자가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그대로 승인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북악산과 남산의 안내문 같은 걸작(?)이 나올 수 없다.

수출용 상품의 영문 설명서나 각종 영문 안내문, 도로표지판 등을 당장 모두 재점검해야 한다. 그것도 교육수준이 높은 영어 원어민을 고용해서 해야 한다.

조화유(재미 저술가, ‘이것이 새천년 미국영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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