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총회]김운용-사마란치, 싸늘하게 끝난 27년 인연

  • 입력 2001년 7월 16일 18시 27분


‘포스트 사마란치.’

흔히 국제 스포츠계에서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을 일컫던 이 별명이 김 위원과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 위원과 사마란치가 처음 인연을 맺은 때는 75년 로마 국가올림픽위원회 총회 당시.

74년 IOC 부위원장에 오른 사마란치와 73년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고 스스로 총재를 맡아 태권도의 국제화에 힘쓰던 김 위원은 한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다.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점과 미국유학파라는 공통점이 크게 작용했다. 김 위원은 태권도, 사마란치도 같은 격투기 종목의 하나인 복싱을 즐겼다는 점도 둘을 가깝게 한 요인. 이때부터 맺은 인연은 올해 4월 김 위원이 IOC위원장선거 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27년간 마치 실과 바늘처럼 끈끈하게 이어졌다.

김 위원은 ‘세계 스포츠 대통령’을 사부로 모셨고 사마란치는 ‘실무통’ 김 위원에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끊임없는 신뢰를 보여줬다.

86년 당시 IOC위원이던 박종규씨가 사망한 뒤 한국정부가 김 위원이 아닌 다른 사람을 IOC위원으로 추천하자 사마란치가 강력히 김 위원을 밀어 IOC 무대에 진출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88올림픽 유치기간 중 급격히 가까워진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를 주고받는 등 최고의 파트너십을 보여줬다.

김 위원은 올림픽정신의 상업화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사마란치의 의중에 따라 IOC 살림을 책임지는 방송분과위원장을 맡아 재정을 부풀렸다. 사마란치는 태권도를 바르셀로나 올림픽 시범종목에 이어 시드니에선 정규종목 채택, 남북 동시 입장 등을 성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둘의 관계가 냉랭해진 때는 올 4월3일 김 위원이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전격적으로 위원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그동안 자신의 후임자 지지를 표명하지 않던 사마란치는 김 위원의 출마선언 2주일 뒤인 17일 강력한 라이벌인 자크 로게(벨기에)를 지지하고 나서며 불협화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어 5월1일 서울올림픽박람회에 참가예정이던 사마란치는 감기를 이유로 방한일정을 취소했다. 그동안 28번이나 방한했던 그로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

이에 김 위원은 선거 한달여를 앞둔 지난달 12일 ‘사마란치 박물관 건립’ 등 화해 제스처를 취했지만 결국 둘 사이에 벌어진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최소한 중립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부’로부터 배신감을 느낀 김 위원은 사마란치가 ‘솔트레이크시티 스캔들’로 인한 위기 타개책으로 들고 나왔던 ‘IOC위원의 올림픽 유치도시 방문 금지’를 비판, 이의 허용을 공약으로 들고 나와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됐다.

<전창기자>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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