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근의 음악뒤집기]뮤직비디오의 전성시대

  • 입력 2001년 6월 8일 17시 52분


들국화 김현식 조동진 시인과 촌장 한영애로 대표되는 ‘얼굴 없는 가수’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얼굴 없는 가수’는 얼굴 있는 가수로 가기 위한 중간 정착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To Heaven'으로 드라마 뮤직 비디오의 붐을 일으킨 조성모를 시작으로 가요계의 신비주의 마케팅은 또 다른 ‘얼굴 없는 가수’를 양산해 오고 있다. 대대적인 뮤직비디오 방영, ‘그는 누구인가?’란 물음표를 단 각종 기사는 얼굴 없는 가수를 얼굴 있는 유명인사로 만들어 간다. 배우에서 가수로 거듭난 ‘스카이 최진영’이 그랬고, 최근 두 번째 앨범의 ‘사랑하니까’를 발표한 ‘문 차일드'도 이런 예정된 절차를 통해 스타로 거듭나고 있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초호화 캐스팅이나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갈등을 그린 삼각구도의 멜로드라마는 어느덧 가요계의 히트 공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국적인 배경, 짧은 커트로 이어지는 남녀의 만남과 사랑의 갈등, 그리고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7분여의 짧은 드라마는 장엄하고 감각적인 발라드와 잘 어울리는 장르인지도 모른다.

이런 뮤직비디오의 전성시대는 1981년 MTV의 개국과 함께 시작되었다. 1980년 중반 MTV는 화려한 몸동작으로 인기를 모은 마이클 잭슨, 마돈나, 신디 로퍼를 MTV 팝스타로 만들었고 음악의 영상시대를 열었다.

MTV 개국으로 일기 시작한 영상음악의 시대는 팝 스타들의 춤뿐만 아니라 록 음악의 역동적인 이미지, 힙합의 반항적인 영상을 통해 음악 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이런 음악과 뮤직 비디오의 만남은 뮤지션들의 앨범 기획과 그들의 이미지에 맞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애니메이션의 파괴적인 영상 미학을 만들어냄으로써 보는 음악의 입지를 굳히게 했다.

라디오헤드의 뮤직 비디오 ‘Street Spirit’과 ‘Karma Police’가 젊은 영상작가들의 실험무대의 장이 되어왔는가 하면,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스매싱 펌킨스의 ‘Bullet With Butterfly Wings’, 홀의 ‘Doll Parts’의 감독인 사무엘 베이어는 다큐멘터리 같은 뮤직 비디오로 90년 얼터너티브 음악의 시대정신을 대변하기도 했다.

블러의 ‘Coffee & TV'에서는 실종자 사진이 실려 있는 우유팩이 살아 움직이는데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나서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단순한 일상의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마돈나의 'Ray Of Light'에서 보여지는 마녀적인 이미지나 마릴린 맨슨의 무대 위의 엽기행각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 그리고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발랄한 몸놀림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에서 볼 수 있듯이 뮤직비디오는 가수의 이미지를 극대화 하고 뮤지션들의 음악적인 상상력을 영상을 통해 구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의 뮤직 비디오는 ‘기승전결’의 분명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드라마나 여가수들의 몸을 따라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뮤직비디오들 역시 가수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거나 음악적인 상상력을 대중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가요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런 뮤직비디오들은 애절한 발라드나 댄스 음악처럼 잠시 대중의 구미를 자극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뮤직 비디오의 잔상은 사라지고 대중은 ‘얼굴 없는 가수’의 또 다른 드라마를 기대한다.

류형근 <동아닷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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