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가바시마 이쿠오/자민당 구원투수 고이즈미

  • 입력 2001년 5월 9일 18시 34분


4월26일 일본에 새로운 총리가 탄생했다. 자민당내에서도 ‘헨진’(變人·이상한 사람, 괴짜)이라고 불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다. 그가 ‘헨진’이라고 불린 이유는 비록 당이 결정한 방침이라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경히 반대하는 완고함 때문이었다.

▼7월 참의원선거 위기감 높아▼

당내 기반이 약한 고이즈미씨가 당내 최대파벌의 영수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를 깨버리고 자민당총재, 나아가 총리로 선출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자민당이 당내혁명이 필요할 정도로 위기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3월 월간 ‘논좌(論座)’에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고이즈미씨를 비롯해 자민당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1980년대에 자민당은 도시의 중간층을 끌어들이고 여러 사회집단을 지지자로 갖는 ‘포괄정당’이 됐다. 일반적으로 포괄정당은 원리(原理)정당이나 특정 종교집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보다도 유권자의 거부감이 적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자민당을 ‘거부정당’이라고 한 응답자가 그 이전 조사(1999년 12월)의 배 이상인 44.4%로 높아지면서 거부정당이었던 공산당과 공명당에 대한 거부도를 넘어섰다. 이대로 간다면 7월의 참의원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민당의 거부정당화에 누구보다도 위기감을 느끼고, 폐쇄적인 ‘자민당을 바꾸자’고 호소하면서 총재선거에 출마했던 사람이 고이즈미씨였다.

당초 자민당 최대파벌의 영수이면서 지방의 자민당원에게 영향력이 있는 하시모토씨가 유력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고이즈미씨는 지방당원의 예비선거에서 지방에 배분된 표의 90%를 획득하는 파죽의 압승을 거두면서 그 여세로 국회의원의 본선거도 제압했다. 지방의 자민당원들은 고이즈미씨와 위기감을 공유하면서 파벌의 집안단속을 물리치고 이단의 고이즈미씨에 개혁을 위탁한 것이다. 역사가 가르쳐 주듯 혁명이 필요할 정도로 위기의식이 고조될 때는 주류파의 힘은 약해진다. 주류파는 스스로가 쌓아올린 시스템을 부정하지도,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내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고이즈미 총리이지만 앞길은 험난하다. 그는 자민당 시스템과 경제불황이라는 두가지 ‘부(負)’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자민당 시스템이라는 것은 단적으로 말하면 ‘발전과 분배’ 정책이다. 일본은 전후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성했는데 거기에는 유효하고 일관된 경제정책과 정치적 안정이 필요했다. 농민이나 도시의 상점주 등은 자민당을 지지함으로써 정치의 일관성과 안정을 지탱해 왔고, 그 대가로 농업보조 등 거액의 정치적인 소득 재분배를 향유해 왔다. 그러나 고도경제성장의 종언과 함께 이 이익분배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곤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정치가는 이익분배 시스템에 완전히 젖어버렸고, 개혁노력을 게을리 했다.

반면 이익유도정책과 관련이 없는 도시의 봉급생활자는 공공사업에 따른 세금낭비와 환경파괴, 이에 따른 구조적인 오직사건에 반발하면서 자민당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도시에서 선출된 고이즈미 총리의 등장은 이 자민당 시스템에 대한 ‘도시의 반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발전과 분배’정책을 대신할 새로운 정책체계를 단기간에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경제재건등 난제쌓여 부담▼

또 하나의 ‘부의 유산’은 일본경제의 불황이다. 고이즈미씨의 지론은 ‘비록 일시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되더라도 필요한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누가 맡더라도 힘들다. 그중에서도 고이즈미씨의 경제재건 시나리오는 피를 흘리는 개혁으로서 대량실업이나 도산이 예상되고, 시간도 걸린다. 그동안에 유권자가 참을성있게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아사히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고이즈미 내각의 지지율은 과거최고인 78%를 기록했다. 모리 요시로 내각의 마지막 지지율이 9%대였던데 비하면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과대한 기대는 부담이다.

두가지 ‘부의 유산’을 짊어진 고이즈미씨의 개혁이 성공하면 자민당의 재생이, 실패하면 곧바로 자민당의 몰락이 기다리고 있다. 성공할 확률은 적지만, 자민당에 남겨진 최후의 도전이기도 하다.

가바시마 이쿠오(蒲島郁夫·일본 도쿄대 법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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