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텃새와 '제노포비아'

  • 입력 2001년 4월 5일 19시 07분


올해 한국 프로 바둑에서 5승1패의 경이적인 실력을 보이는 외국인 기사가 있다. 주인공은 97년 대만에서 건너온 천스위안(陳時淵) 초단이다. 아직 한국말을 떠듬거리는 16세 소년. 그는 아직 규정 대국수(9국)를 채우지 못해 랭킹에는 빠져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겨우 입단대회를 통과한 풋내기로는 대단한 기세가 아닐 수 없다. 이창호 9단을 두 판이나 잡은 천재소년 이세돌 3단도 승률은 66%(8승4패) 아닌가.

▷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라는 중국 여성이 지난해 조훈현 9단을 물리치고 국수위에 올라 경악을 안겨 주었다. 한국 바둑의 ‘주장’격인 조 9단을 꺾고 최고 권위의 타이틀을 따냈으니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루이 국수는 여류국수 흥창배 등도 두루 석권해 ‘어쩌다’ 국수가 된 게 아님을 보여 주었다. 조 9단은 벼르고 별러 다시 국수전 도전자가 되어 루이 9단을 몰아붙이고 있다. 조 9단은 최다승(13승), 승률 3위(72%)로 전성기 기량을 보여준다.

▷외국인은 언제 어디서나 본바닥 사람들을 긴장케 한다. 영어에도 외국인 공포증을 의미하는 ‘제노포비아’라는 말이 있다. 이런 심리의 저변을 ‘정보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하는 분석도 있다. 농경 정착사회에선 낯선 이, 다르게 생긴 사람은 어쩐지 미더워하지 않는다. 외지인이므로 잘못을 저질러도 제재할 수단이 약하다. 그러니 정보가 확실치 않은 이방인을 아예 따돌려 ‘텃세’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연 혈연에 빠지는 이유도 그렇게 설명한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정착사회도 아니며, 정보라는 것도 시시각각 변하는 판이다. 외국인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국제화, 지구촌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한국의 조치훈이 일본 바둑을 한 수 끌어올리고 하와이 출신 장사들이 일본 씨름을 강화했듯이, 이방인 ‘잡종교배’는 문화의 두께와 깊이에 이바지한다. 천 초단이나 루이 국수도 분명 한국 바둑의 약이 될 터이다. 외국인에게 가슴을 활짝 열고 기꺼이 ‘불확실성’을 호흡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까지도 포함해서.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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