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민병욱]개헌론은 음모인가

입력 2001-03-26 18:39수정 2009-09-2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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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논의가 빠르게 물살을 타고 있다. 한나라당 김덕룡의원이 지난주 정 부통령 4년 중임제 개헌론 입김을 뿜자 여당 중진들이 기다렸다는 듯 닻을 올렸다. 한나라당 주류측이 “김의원 발언은 여권의 정계개편 ‘음모’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반격했지만 개헌논의는 이미 선장 없이 항구를 떠난 배 모양이 됐다.

이번 개헌론이 느닷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그간 꾸준히 개헌의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심지어 지금 개헌을 반대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이회창총재도 지난해 4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중임제 개헌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했다. 최근에야 그는 “개헌론은 인위적인 정계개편 의도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고 분명한 반대입장을 정리했다.

▼대선전에 반드시 불거질 일▼

여권이 정권재창출을 위한 정치권의 새판 짜기를 꾸미고 있으며 개헌을 그 지렛대로 이용하려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략적 음모론이다. 김덕룡의원이 작심한 듯 개헌논의에 불을 지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를 위해 여당과도 접촉하겠다고 공언했으니 그 진의를 의심하며 음모론을 내세울 만도 하다.

당연히 개헌을 주장하는 야당의 비주류, 즉 김의원과 박근혜부총재 등이 실제 여권과 사전모의를 하고 움직이느냐가 큰 관심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제기하는 개헌론은 여당과의 교감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일견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정치역학상 개헌으로 어떤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의견은 내년 대통령선거 전에 필연적으로 불거질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살펴보면 그게 분명해진다. ‘지역감정’과 ‘3김 이후’, ‘정계개편’과 ‘권력구조’의 문제들이 항상 개헌과 맞물려 얘기된다. 한국정치가 안고 있는 병폐나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 중 돈 문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안이 개헌으로 일정부분 해결 가능한 것처럼 인식돼 있다. 대선이 다가오며 차기 리더십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것도 그 한 이유다.

누구나 알다시피 내년 대선은 15년 만에 처음으로 3김이 출마하지 않는 가운데 치러진다. 김종필씨가 유동적이었지만 얼마 전 DJP회동에서 “출마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지역주의의 대표적 정치인들인 3김이 출마하지 않는 선거라면 지역감정이 상당부분 희석된 채 치러지는 게 마땅한데 상황은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벌써부터 ‘영남후보론’이니 ‘영남포위론’에다 ‘호남불가론’과 ‘중부권 대세론’ 등이 어지럽다. 여기에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도 ‘킹 메이커론’을 들먹이며 대선판에 수저를 놓을 것이란 얘기다. 김대중 대통령은 막판 ‘김심’으로 대세를 가릴 것이란 설이 분분하다. 3김 이후에도 3김 모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에 대항할 것으로 유력시되는 한나라당 이총재의 사정은 어떤가. 3김이야말로 청산해야할 대표적 지역주의 정치인이라고 매도하면서도 그 역시 특정지역에 매달린 듯한 정치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1인 보스체제’를 타파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제왕적 총재’로 군림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자당 내에서조차 이총재도 3김과 함께 청산돼야 할 대상이라며 그의 지지율 답보가 그걸 바라는 국민의 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든 야든 내부에서 각자의 대선후보군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누구도 모든 지역을 감싸고 어루만지는 능력을 갖추지 못해 결국 또 한차례 지역대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만고만한 리더십의 불안한 대결로 가기보다 연합후보 형식의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자는 것이 개헌론의 근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국민들 시선 곱지않아▼

정치권 사정이야 어떻든 국민들은 경제도, 민생도 어려운데 벌써부터 대선만 바라며 개헌논의를 해야겠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 현재의 의석구도로는 개헌 성사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러나 지역주의 문제나 3김 이후의 정치구도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한 정치권의 개헌론은 수그러들지 않을 게 분명하다.

모든 지역을 감싸안고 3김 이후의 확실한 리더십으로 자리매김한 사람이 아직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민병욱<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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