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뒷이야기]피마르는 감독들 못 말리는 '술실력'

  • 입력 2001년 3월 23일 20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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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포스트시즌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지만 각 팀 사령탑들은 피가 마르고 살이 탄다.

어깨를 짓누르는 승부에 대한 심리적 중압감, 스트레스는 풀지 못하면 전체 경기를 그르칠 수 있는 독(毒)이다. 45게임을 치른 페넌트레이스에서 나타난 국내 프로농구 감독들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일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분모는 역시 한잔 술이다. 다음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스트레스를 봄눈 녹이듯 푸는 술은 더할 나위 없는 약이 되곤 한다. 스포츠 관련 종사자들은 외향적인 성격에다 훈련으로 단련된 건강한 체질 덕분에 대개가 ‘말술’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농구인들은 술이 세기로 유명하다. 항간에는 키가 큰 덕에 ‘장(腸)도 길어’ 술에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정규리그에서 우승한 삼성 김동광 감독은 타고난 승부사다. 술자리에서도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와 술자리에서 대적하면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선 버텨내기 힘들다. 현역시절 김감독과 술에 얽힌 일화 한 토막. 당시 기업은행 운동부에는 술에 관한 한 절대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두 명의 선수가 있었다. 물론 한 명은 농구의 김동광이었고 또 다른 한명이 바로 야구의 윤동균(현 프로야구 한화 수석코치)이었다. 두 사람은 동료들의 부추김 속에 술자리에서 만나 ‘진검승부’를 펼쳤다. 심판은 야구부 선배 정진구(전 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 이사)씨. 단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저녁에 시작된 술시합은 다음날 아침께야 끝이 났다. 결과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윤동균의 백기투항으로 김동광의 완승. 훗날 윤동균은 “술로는 난생 처음 졌다”며 야구인들에게 “절대 농구인들과 술시합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한다.

일단 술잔을 기울였다 하면 먼동이 틀 때까지 술자리가 이어진다. SK 최인선 감독과 SBS 김인건 감독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 모두 소주파다. 그러나 차이점은 있다. 최감독이 한자리를 고수하는 스타일인 반면 김감독은 차수를 옮기기를 좋아한다. 보통 3, 4차는 기본이다.

삼보 김동욱 감독대행의 별명은 ‘백보드’다. 술잔을 비우고 곧바로 상대에게 넘겨주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농구로 말한다면 세트 오펜스(지공)보다 속공을 선호하는 스타일. 두주불사의 말술답게 안주를 집는 젓가락도 필요없다. 속을 아리게 하는 그 독한 술을 달래는 유일한 안주는 보리차. 따라서 술자리에 앉으면 보리차가 가득 든 물통을 신주단지 모시듯 옆에 둔다. 한잔 마시고 물 한 번 들이키고…. 농구인 치곤 몸집이 작지만 타고난 술꾼으로 이름 높다.

골드뱅크 진효준 감독은 타고난 미식가. 술 역시 맛깔진 와인을 선호한다. 경기가 끝난 뒤 깔끔한 일식집을 자주 찾는 진감독은 싱싱한 활어에다 달콤 쌉쌀한 와인을 즐긴다. ‘작취미성’의 술은 삼가지만 맘먹고 술잔을 털어넣기 시작하면 역시 무시하지 못할 주당이다.

LG 김태환 감독은 터프한 외모와 달리 섬세하다. 한 잔 술과 더불어 구성진 가락의 노래솜씨가 일품이다. 가요 반주기의 노래곡목을 줄줄 꿰차고 있을 정도다.

술보다 술자리에서 나누는 얘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스타일. 나이 어린 신세기 유재학 감독이나 동양 김진 감독대행이 대표적이다. 남의 얘기에 귀기울이며 술잔보다 물컵에 손이 자주 간다.

<고진현/ 스포츠서울 체육팀 기자 jhkoh@sportsseou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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