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총리 2단계 퇴진 '밀실 코미디'

입력 2001-03-11 18:41수정 2009-09-2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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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사실상 퇴진의사를 밝힌 일본의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는 ‘2단계 퇴진’이라는 희한한 절차의 주인공이 됐다. 조기 퇴진도 부끄러운 일인데 물러날 시기마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한심한 상황이다.

모리 총리의 퇴진은 지난달부터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자민당 내부는 물론이고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보수당 의원들마저도 “빨리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해 그를 사면초가로 몰았다. 장기적인 경제불황과 9% 대로 떨어진 내각 지지율도 그의 퇴진을 재촉했다. 일부에서는 모리총리가 퇴진하는 것이 최고의 경제정책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참의원에서 심의 중인 새해 예산안과 19일의 미일 정상회담, 26일의 러일 정상회담이 모리의 빠른 퇴진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모리총리가 막상 그만둔다 해도 자민당 내부에서 아직 후임총리를 내정하지 못한 것도 그의 발걸음을 막았다.

모리 총리와 관련된 구설수

일시제 목내 용
2000년5월신의 국가발언“일본은 역시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의 국가다.”
취재거부(취침시간을 묻자) “적당히 알아서 쓰면 될 것 아니냐.”
6월‘잠잤으면’ 발언(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직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이 40%정도 있다. 관심이 없으면 (투표하지 말고) 그냥 잤으면 좋겠다.”
10월피랍자 제3국

발견 방안
“3년 전 북한에 갔을 때 북한에 피랍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들을 행방불명자라고 해서 제3국에서 발견된 것으로 하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고 제안했었다.”
2001년2월골프 사건“이게 어떻게 위기관리에 해당되느냐, 사고아니냐.”(실습선이 미 핵잠수함과 충돌했다는 사고소식을 듣고도 계속 골프를 친데 대해 해명하며)
팩스 친서설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정상회담을 갖자는 내용을 팩스로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남. 본인은 부인.

이 때문에 자민당 집행부는 모리총리가 내부적으로는 퇴진의사를 밝히되 실제로는 4월 초순에 물러난다는 ‘2단계 퇴진방안’을 생각해 냈다.

일본 언론들은 이 같은 편법에 대해 “총리가 국민에게 퇴진의사를 밝히지 않고 당에만 퇴진의사를 밝히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대표는 “밀실에서 탄생한 모리총리가 밀실에서 물러나려 한다”고 비난했다.

모리총리의 퇴진이 뚜렷한 ‘실정’보다는 스스로의 ‘실언’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그는 취임 이후 ‘신의 국가 발언’이나 ‘피랍자의 제3국 발견 제안’ ‘유권자의 투표포기 희망발언’ 등 숱한 구설수를 남겼다. 여기에다 폭력단 간부와의 친분설, 골프회원권 공짜 수수 등도 문제가 됐다. 그 중에서도 고교 실습선이 미 핵잠수함과 충돌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계속해서 골프를 친 것이 치명타를 안겼다. 이로 인해 그는 ‘총리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낙인이 찍혔고 결국 취임 1년 만에 물러나게 됐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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