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영도의 판타시아

  • 입력 2001년 3월 4일 19시 43분


로도스도 전기(미즈노 료) ― 엔터테인먼트 판타지의 시작이자 완성

세계적인 판타지 명작을 꼽는다면 두 가지는 꼭 들어간다. ‘반지전쟁’과 ‘로도스도 전기’(국내 번역명 마계마인전)가 그것이다.

그러나 ‘반지전쟁’ 팬들 중에는 작품을 완독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일단 완벽하게 번역되지 못한 데다가(영어, 노르딕어, 켈트어, 고딕어가 난무하는 원문은 번역자를 좌절시킨다.) 가까스로 번역된 부분도 이 소설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장중함으로 가득하기에 여가 활동을 위해 책을 드는 독자들의 기를 꺾는다.

반면 ‘로도스도 전기’의 팬들 중에는 완독하지 못한 사람이 극히 드물다. 일단 재미있게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도스도 전기’는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판타지’로 부를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RPG)이 판타지 소설을 기원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판타지의 환상을 몸소 즐겨보기 위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전사나 마법사의 역할을 연기하는 게임을 만들어낸 것이 RPG의 시작이다.

이 말이 어렵다면, 아빠나 엄마의 역할을 연기하는 소꿉놀이를 생각해보라. 롤플레잉이라는 말은 그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 역할(roll)을 연기(play)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RPG를 컴퓨터에서 즐겨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CRPG, 즉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이다.(요즘은 컴퓨터 게임을 RPG라고 부르지만.)

이렇듯 현대에 들어 판타지는 문학 내에서만 머물지 않고 그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주위의 산업으로 전파시켜왔다. ‘로도스도 전기’는 바로 이런 판타지의 파생에서 쓰여진 걸작이다.

‘로도스도 전기’의 저자인 일본인 미즈노 료는 작가이자 훌륭한 RPG 플레이어였으며 동시에 RPG 제작자다. 그는 ‘소드 월드’라 불리는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기 위해 ‘포세리아’라 불리는 세계를 창조했다.

미즈노 료는 게임 뿐 아니라 ‘포세리아’ 대륙의 남부에 위치한 저주받은 섬 ‘로도스’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설로 옮겨내는 데까지 성공했다. 바로 ‘로도스도 전기’의 탄생이다.

8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한 미즈노 료는 이로써(‘반지전쟁’이 영국 판타지를 규정지어버렸듯이) 일본 판타지를 상당 부분 규정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일본 판타지의 특색은 이처럼 다른 여러 산업으로 쉽게 전용이 가능한 점이다. ‘로도스도 전기’만 해도 ‘소드 월드’ 뿐만 아니라 소설과 애니메이션, 팬시, 게임 등으로 무수히 재탄생했다.

일본의 판타지는 재미가 있다. 글 읽는 재미와는 약간 다를지 모르겠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는 충분하다. 그리고, 판타지의 본령은 어차피 상상력이지 않을까? 환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재미를 찾으려면 ‘로도스도 전기’는 좋은 선택이다.(판타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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