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본 '김용옥 신드롬'

  • 입력 2001년 3월 4일 18시 37분


◇"실록강의 했어도 '도울논쟁' 생겼을것"

철학자 김용옥씨의 TV강의가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식을줄 모르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김씨의 강의에 여전히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딱딱하고 지루한 논어 강의가 이처럼 사회적 회오리를 몰고 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정신과의사 정혜신씨가 ‘김용옥 신드롬’을 김씨 개인과 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해부한다. <편집자>

‘도올 논쟁’이 거세다. 관련학자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가세하여 비판의 칼날과 옹호의 논리를 내세운다. ‘논어 논쟁에 논어가 빠졌다’는 한 신문의 지적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 글은 논어와 공자에 대한 해석과 이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학문적 논쟁과는 전혀 무관한, 도올에 대한 심리적인 해석이다. ‘도올 논쟁’의 진원지는 논어 그 자체가 아니라 김용옥 개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도올은 그의 강의에서 ‘강의 30분, 독설 30분’이라고 할만큼 김용옥 개인의 가치관을 공자의 그것보다 더 잘 드러낸다. 공자의 카리스마보다 오히려 김용옥의 카리스마가 앞서 보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아마 도올이 논어대신 ‘조선왕조실록’을 강의했어도 그에 대한 논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도올 논쟁’은 기본적으로 김용옥의 개인적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올에 관한 논쟁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데는 지극히 감정적인 그의 성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도올은 ‘충동적 열정가’ 스타일인데, 이런 사람에게 넘치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같은 정열이며 가장 결여된 부분은 ‘꾸준한’ 논리적 성향이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학자라는 사실과 수십권에 달하는 그의 저작물은 도올이 논리적인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그러나 도올의 학문적 성취는 지적 호기심의 발로라기보다는 그의 충동적 열정에 의해 밀려나온 감정의 퇴적층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 싶다. 철학, 한의학, 종교, 문학, 영화, 연극 등에 이르는 폭넓은 관심분야는 그의 충동적 열정이 훑고 지나간 ‘길’인 셈이다.

도올은 그 특유의 감정을 드라마틱하고 과장되게 표현한다. 강의 중간에 ‘엄청나게’라든가 ‘대∼단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깨달음’도 감정적 루트를 통하는 사람이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은 ‘순간적인’ 감정적 확신에 의해 결정된다. 첫 대면에서 내린 부인과의 결혼 결심, 대학시절 노자강의 세 번째 시간에 동양철학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걸겠다고 결심한 과정 등이 모두 그렇다. 그래서 그의 깨달음엔 확신이 더하다. 감정적 근거는 논리적 근거보다 더 강렬한 에너지를 더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올의 학문적 논리라는 것은 사실 자신의 감정적 깨달음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차적 도구일 수도 있다.

도올은 강한 정서 체험을 중히 여기는 성향때문에 객관적 사실조차 자신의 주관적 느낌에 맞게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주관에 일치하는 자료에만 초점을 맞추는 ‘감정적 경향’ 때문이다.

그런 결과로 인식은 치열하지만 결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도출되기도 한다. 이것이 전문가 집단의 비판을 불러 일으키는 도올의 개인적 특징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비판에 관계없이 대중이 도올에게 매료되는 이유 중 그 첫째는 그의 정열과 감정적 성향이 가진 강력한 전염력 때문이며 둘째는 그의 감정적 성향이 동양철학이라는 ‘지적(知的) 마감재’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감성과 논리를 동시에 갖춘, ‘뜨거운 얼음’처럼 동거가 불가능한 둘이 공존하는 독특하고도 아슬아슬한 매력을 보는 기쁨이라고 할까.

감정적인 사람은 논리적인 사람을 ‘답답하고 창의력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논리적인 사람은 감정적인 사람을 ’천박하고 기본을 무시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절대 부동의 위치에 놓고 바라보는 상대의 얼굴일 수 있다. 이유없이 도올이 싫거나 무조건 그가 좋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당연하지만 새삼스러운 명제다.

정혜신/정신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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